2013년 기사글

신바람 웃음 전도사 황수관 박사

투데이뉴스코리아 2018. 2. 5. 18:44






신바람 웃음 전도사 황수관 박사
자상한 아버지, 좋은 형님이었던 황수관 박사를 추모하며
 
강경구

공부를 위해서라면 산전 수전 공중전 감행

▲ 아내, 아들, 딸, 손자, 손녀에게 늘 웃음으로 대해주시던 자상한 아버지였다는 황수관 장로     © 출처: 황수관 박사 홈페이지
경주 안강 사람 황수관,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다닐 학비를 벌기 위해 1년 동안 산에서 나무를 했고, 새벽 4시에 일어나 14km 떨어진 중학교를 여섯 시간을 걸어 포항까지 통학을 감행한 그의 입지전적인 삶은 언제나 감동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대에 입학하고 교직 생활을 하다 대구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지만 의학에 관심이 생겨 의학(醫學)이라는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감행한 그는 청강생의 신분으로 의대 교수들의 잦은 수모와 따돌림을 받았지만 시험 때에는 의대생들보다 더 훌륭한 답을 써서 교수들을 놀라게 했다는 드라마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0년이라는 기나긴 의학 수업 청강, 그러나 그에겐 졸업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대 의대 교수 공개채용에서 유수한 명문대 의대 졸업생, 유학파 등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실력하나로 연세대 의대 교수가 됐다는 이야기는 이제 지워지지 않을 신화로 남아있다.

26년간 섬긴 강남중앙감리교회 황수관 장로

▲ 26년간 섬긴 강남중앙감리교회 98년 황수관 집사는 장로로 임직했다.     © 출처: 황수관 박사 홈페이지

평생을 함께했다는 조남수 목사는 “‘신바람 웃음 전도사’ 황수관 장로님은 5대양 6대주를 순회했던 인기 강사였지만 성도가 10명이 못되는 작은 교회도 기꺼이 달려가 행복과 기쁨을 나눴던 진정한 전도자였다”고 회고했다. 아들 황진훈 씨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황수관 장로님, 당신은 아내에게도, 아들, 딸, 손자 손녀에게도 늘 웃음으로 대해주시던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라며 고인을 회고했다. 생전 많은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왕성한 활동을 해온 신바람 전도사였던 황수관 장로는 형제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항상 '건강'을 당부했다고 한다.

▲ 성도가 10명이 못되는 작은 교회도 기꺼이 달려가 행복과 기쁨을 나눴다는 진정한 전도자 황수관 장로는 노인들과 청소년, 주부, 군인 등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 출처 황수관 박사 홈페이지
'국가'와 '나라' 걱정으로 마지막까지 "선거 잘하라"고 당부했다는 황수관 장로는 평소에도 ‘예수 믿는 우리 집, 봉사하는 우리 집, 항상 기뻐하는 우리 집’을 강조했다고 한다. 북한 기아 어린이와 동남아 쓰나미, 미국 허리케인, 아이티 지진 등 각종 재난 구호에도 앞장서 지난해 12월 개도국 보건의료 협력대사로 임명됐었던 그는 지난 2004년 기독교문화선교회를 설립한 이래 신바람 건강세미나를 통해 한국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웃음과 회복을 통한 치유의 메시지를 전해왔었다.

마지막까지 남기고 간 감동 그리고 새론 도전

▲ 매일 아침 인간 황수관을 일으키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 출처:황수관 박사 홈페이지
매일 아침 인간 황수관을 일으키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웃음과 신바람이라는 명제를 안고 누구든 원하는 곳이라면 달려갔던 초인 황수관... 부모님이 살아계실 땐 언제나 부모님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는 그는 남의 건강을 위해 자기를 돌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하늘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도 매일 거제도와 전국을 다니며 두 세 개씩의 강연을 강행했다고 하니 그의 열정앞에 숙연해지지만 너무나 아쉬워질 수밖에...

▲ 생전의 영상을 보면 선뜻 웃음보다 울음이 앞선다. 슬퍼서가 아니다. 마지막 품었을 그의 기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 출처:황수관박사 홈페이지
12월 12일, 병원을 찾았을 때도 그를 알아본 병원 측이 ‘급행’ 진료를 제안했지만 이를 고사하고 일반 환자와 똑같이 순서를 기다렸다는 황수관 박사는 대구 교대,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국민대 이학박사후 연세대 의대 생리학과 교수, 대한스포츠의학회 부회장,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 개도국보건의료협력 대사, 한국국제협력단 홍보대사... 수없이 많은 명패와 공로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남기고 떠났다. 그의 죽음이 의료사고일 수 있다는 의혹과 기나긴 정치이력으로 인한 식상함도 있겠지만 황수관 박사는 교회의 장로로, 하나님의 아들로, 대한민국을 웃고 울린 건강 전도사인 공인으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다가 갔다. 생전의 영상을 보면 선뜻 웃음보다 울음이 앞선다. 슬퍼서가 아니다. 마지막 품었을 그의 기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고구려대학 대체의학 겸임교수/노벨요양병원 보완대체의학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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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1/04 [03:40]  최종편집: ⓒ news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