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기사글

'호남선교' 유진 벨 선교사家 이야기(1)

투데이뉴스코리아 2018. 1. 31. 12:58






'호남선교' 유진 벨 선교사家 이야기(1)
삶의 가치를 묻는 이들에게 유진벨(Eugene Bell)은 말한다
 
강경구
유진벨 재단(회장 인세반) 이 북한에 결핵약을 전달하기 위해 22일 방북했다. 인세반 회장을 포함한 12명으로 구성된 방북단은 중국 베이징을 거쳐 항공편으로 평양에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지난 2월 통일부의 승인으로 이루어진 이번 방북은 평안남·북도와 남포시 등에 있는 다제내성 결핵센터 12곳에 7억원 상당의 다제내성결핵약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부터 시작된 유진벨 재단의 북한 결핵환자 돕기 지원사업을 통해 유진벨 재단의 역사와 그동안의 가족사를 통해 한국사회가 얻고 있는 그들의 사랑과 지원에 대한 감사에 답하고자 한다. 일부 사진은 유지벨 재단(eugenebell.org)의 자료임을 밝힌다.

삶의 가치를 묻는 이들에게 유진벨(Eugene Bell)은 말한다.

▲ 유진벨이 떠난지는 89년째다. 어느새 동산의 높이만큼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르고 있다.     © 강경구
삶의 가치를 묻는 이들에게 광주 양림동은 그 출발이자 원점일 수 있다. 되돌릴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버린 내 삶의 원초를 찾아 산을 넘고 바다를 넘어야 할 이들에게 양림동은 우두커니 한참을 서서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를 바라보며,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며 가슴 가득 묻어오는 감동과 삶의 진정성을 물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물어볼 수밖에 없는 절망스런 현실 앞에 서서 정체되고 혼란한 나를 회복하고 일어설 수 있는 곳이 바로 양림 동산이다. 100년이 넘은 호랑가시나무들을 흔들며 지나는 바람은 여기저기 오랜 흔적을 흔든다. 유진벨(bell, eugene, 배유지), 오웬(owen, clement carrington, 오기원), 쉐핑(elisabeth johanna shepping, 서서평), 포싸이트(forsythe, w. h., 보위렴), 윌슨(wilson, r. m., 우월순)... 낯선 이역의 땅에서 부르심이라는 소명을 안고 찾아와서 100년을 넘게 이국의 땅에 묻혀있는 이름들을 하나 둘씩 불러보게 한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내안에 느껴지는 역동의 무언가가 있다. 유진벨과 오웬 선교사의 사택을 마주보고 있는 호랑가시나무가 식재된 이후 명명된 '푸른 언덕'(green hill)으로부터 양림산(楊林山)까지가 109m다. 오웬이 우리들 곁을 떠난지 오늘로 105년이 됐고, 유진벨이 떠난지는 89년째다. 어느새 동산의 높이만큼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르고 있다.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선교사의 가족사

▲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     © 강경구
유진 벨 선교사는 남장로교회 소속으로 1895년 4월 아내 로티 위더스픈(Lottie Witherspoon Bell, 1867-1901)과 함께 파송되었다. 첫 번째 사역지인 나주지역을 1896년 11월 3일부터 6일까지 답사하였으나 유생들과 주민들의 반대로 실패한다. 목포로 옮겨가 목포 선교부를 설립했고, 열정적인 교회개척과 교육활동중 목포 정명학교와 영흥학교가 설립되었다. 시련도 많았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었지만 1904년 12월 19일 오웬과 함께 광주로 이주했다. 그해 12월 25일 성탄절에는 유진 벨과 오웬가족, 변창연 등 40여명과 광주지방 최초의 교회를 창립한다. 당시 양림리는 광주의 중앙통이라 할 수 있는 남문에서도 멀리 떨어진 외딴 곳으로 묘지가 많았고 인가도 드문드문 후미진 곳으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곳을 중심으로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하여 교육활동을 펼쳤고, 광주 최초의 종합병원인 광주기독병원(현 제중병원)을 중심으로는 의료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교회개척에도 온 힘을 쏟았다. 줄기차게 30년간 일했고, 1925년 9월 28일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아꼈던 양림동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유진벨의 둘째 딸 샤롯 벨(1899-1974)과 결혼한 윌리엄 린튼(1891-1960)

▲ 유진벨의 둘째 딸 샤롯 벨과 결혼한 인돈 선교사     © 강경구
샤롯 벨(Charlotte Bell, 1899-1974)은 교통사고로 두 살 때 어머니를 잃었으며, 당시 한반도에는 영, 유아 사망률이 높아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다가 장성한 후 1912년에 내한하여 군산에서 일했으며, 윌리엄 린튼(William Linton, 1891-1960)을 만나 결혼했다. 린튼은 21세로 한국에 온 최연소 선교사로써 일본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곧바로 한국에서 일하는 유진벨 가문의 제2대 선교사가 됐다. 린튼은 교육선교사로 전주, 이리, 군산 등지를 오가며 전주 기전여학교, 신흥학교 등에서 교장으로 일했다. 샤롯은 기전여학교 교장으로 일제의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강제 추방되기도 했다. 해방과 함께 다시 찾은 부부는 6.25 전쟁의 참화중에도 부산으로 활동무대를 옮겨가 피난민 구호활동을 전개했다. 전쟁종식과 함께 1956년 한남대학교의 전신인 대전대학을 설립했다. 1960년 부르심을 받기까지 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헌신했다. 윌리엄 린튼 목사 부부는 40여년의 사역 기간 동안 군산, 전주, 목포, 광주, 대전 등에 여러 학교를 세웠다. 그의 한국명은 “인돈”이다.


유진벨의 외손자 휴 린튼(Hugh M. Linton, 1926-1984)
▲ 유진벨의 외손자 휴 린튼(Hugh M. Linton, 1926-1984)     ©강경구
 
유진벨 가문의 한국 선교 사역은 윌리엄 린튼과 샬롯 린튼의 세째 아들인 휴 린튼(Hugh M. Linton, 1926-1984)이 이어 받았다. 휴 린튼(한국명, 인휴)은 선대에 이어 제3대 한국선교사로 일했고, 세 아들을 결핵으로 잃었으며, 해군 장교로 인천 상륙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1960년대 대부분을 전라남도 산간벽지를 돌며 교회를 개척하고 한국인들과 함께 한국사람처럼 살았다. 린튼의 부인 로이스는 자녀들을 결핵으로 잃었지만, 그것이 계기가 되어 순천에 결핵진료소와 요양원을 세웠고, 순천결핵재활원 책임자로 1996년 은퇴하기까지 35년간 결핵퇴치를 위해 일했다. 휴 린튼 목사는 주로 교회개척에 힘썼는데, 그가 바로 “순천의 검정고무신”이다. 그마져도 고흥 간척사업도중 1984년 교통사고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

유진벨의 외증손자 스티브 린튼과 존 린튼
▲ 스티브 린튼(Steve Linton, 인세반, 현 유진벨 재단 이사장)     © 강경구
휴 린튼과 로이스 린튼의 둘째 아들인 스티브 린튼(Steve Linton, 인세반, 현 유진벨 재단 이사장)과 막내 아들인 존 린튼(John Linton, 인요한)은 자신들의 외증조부인 유진벨 선교사의 한국 선교 사역 100주년을 기념하여 1995년에 유진벨 재단을 설립하였다. 1995년은 북한지역의 가뭄과 수해로 인한 극심한 피해들을 돕기 위해 유진벨 재단은 북한선교의 첫삽을 뜨게 됐으며, 1997년 북한의 보건성으로부터 결핵 퇴치 공식 지원 요청을 받아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순천기독결핵재활원 내 해외사업부 소속으로 '유진벨 프로젝트'가 출범하기도 했다. 그들의 지원은 철저히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이며, 북한에 대한 곡물 지원 사업, 결핵 퇴치 운동, 의료 약품 및 장비 지원, 보건·의료 분야의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금까지 총 400억원이 넘는 의약품과 의료 장비가 전달됐다. 지난 3월 14일에는 "북한 지하수 개발을 위해 시추기계 두 대와 유엔 산하 아동구호기금(UNICEF)이 기증한 기계 한 대가 북한으로 보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들 가문에는 어머니와 동생 부부가 이끌고 있는 미국의 5대 대북지원 단체 중 하나인 ‘조선의 그리스도인 벗들(Christian Friends of Korea)’이 조직되어 대북지원에 나서고 있다.

 한국파송 선교사가 171개국 2만 85명에 이르고 있다. 받았으니 기꺼이 나눠주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같은 정신이 한국교회의 저변에 있다. 문제는 사회적 인식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파송 선교사의 증가폭이 줄고 있다고는 하지만 선교사들이 해외에 새운 미션스쿨이 한국선교연구원(KRIM, 문상철 원장)조사에 의하면 810개로 집계되고 있다. 1월에 발표된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발표한 2만5천745명과는 다른 통계이지만 한국기독교의 저변을 평가할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생명은 봄이오면 반드시 꽁꽁 언 대지를 뚥고 뻗어 나오는 순(筍)처럼 반드시 천지를 덮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개척의 추운현실을 이기기 위해 기도와 전도로 지역 복음화의 최일선에 있는 군소한 교회들과 생사를 걸고 복음의 최전선에 나가있는 대한민국 선교사들을 위해 기성 교단과 교회들의 기도가 복음과 선교적 가치쪽으로 소리를 높여가야 할 때이다.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고구려대학 대체의학 겸임교수/노벨요양병원 보완대체의학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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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4/26 [14:00]  최종편집: ⓒ news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