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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종순 호신대 총장 "그녀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추모 | ||||||||||||||||||||||||||||||
아름다운 사람 서서평 선교사를 기리는 예배![]()
26일 광주엔 바람이 불었다. 그것도 중형급 태풍이다. 올해 발생한 제 5호 태풍 메아리(meari)는 중형태풍으로 중심기압 990hpa, 최대풍속 86km/h로 광주엔 하루종일 바람과 비를 예고하고 있었다. 태풍 메아리의 26일 예상 진로는 오전 6시경 서귀포 서남서쪽 부근 해상을 지나고 오후에는 목포 서남서쪽 해상을 거치며 저녁 제주도를 시작으로 27일 오전에는 호남이 영향권에 든다는 예보가 하루종일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서서평 선교사의 77주기 추모예배에 맞추어 태풍 메아리는 돌연 방향을 북한 지역으로 정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사실 메아리라는 태풍의 이름은 북한이 명명했다고 한다.
하늘은 아직 태풍의 잔재로 시커먼 구름이 떼지어 날아들었다. 구름을 져나르던 바람은 100년도 더 된 나무들을 흔들어 댔다. 나무들은 아는지... 100년이 훌쩍 넘어버린 호남선교의 발자취를 따라 유진벨, 오웬, 구보라... 쉐핑에 묘지석 위에 이르기까지 여름의 초록 잎사귀들은 빗물처럼 흩어져 내렸다. 숙연했다. 아름다운 선교사 서서평을 향한 추모객들의 마음안엔 지금 이 세대가 필요한 제 2의 쉐핑에 대한 간절함과 그녀의 삶이 지독하게 그립고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수막 하나 걸리지 않는 추모예배는 검소했던 그녀의 단면을 보는 듯 했다. 빠알간 꽃 한무더기 태풍이 스치고 간 자리에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내 안에도 끊임없이 솟구치는 질문이 하나있다. 쉐핑은 말한다. 할 수 있거드니 무슨말이냐고...
한국기독사 전문가로 호남선교의 발자취를 심도있게 연구하여 알리고 있는 호남신학대학교 차종순 총장은 쉐핑의 약력보고를 통해 1912년 32살의 나이로 미혼이었던 쉐핑이 미국 남장로교 간호선교사로 파송되어 전라도땅 광주에 왔으며, 초기 파송시점에 소화기계 한국풍토병으로 알려진 스푸르(sprue)에 걸려 고생하였으며, 그녀가 1934년 향년 54세를 끝으로 소천한 원인역시도 풍토병(sprue)과 영양실조였다고 한다. 서양에서 온 이국의 여성선교사 의 몸으로 쌀뒤주에 밀가루 2홉을 남기고 간 그녀는 일년 동안을 한 켤레의 신발로 생활했으며, 자기의 시신을 해부하는데 쓰라는 유언을 남기고 갔다고 했다. 그녀와 평생을 함께했던 이봉님 권사의 말을 빌리자면 다 나눠주고 마지막 덮고 있던 이불마져 들고 가 당시 금동 다리밑에 있는 최씨 할아버지에게 갔다 주었다고 쉐핑의 나눔과 희생을 소개한다. 한국 어린이 14명을 양자로 키웠던 그녀는 고아들의 어머니였고, 간호사 사역의 주춧돌이었으며, 전도사로서 교육자로서 신실한 신앙인으로서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갔다. 오늘날의 광주가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근저에 서서평이라는 여성 선교사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희생이 존재하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대목이다.
백경홍 목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을 강조하며, 소명의 중요성과 소명을 이루기 위해 꿈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 부르심 이후의 순종과 헌신적인 삶을 통해 모범을 보였던 서서평 선교사의 모델적인 삶을 통해 그녀의 순종을 통해 헌신이 없는 세대에 대해 헌신을 촉구하였고, 서서평 선교사가 간호학에서 신학까지의 10년간의 투자와 자신의 몸에 대한 돌봄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당시대의 절박함을 온 몸으로 떠안아야 했던 그의 마음을 뭐라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죽음 이후에는 시신을 기증하는 등 그녀의 삶 자체가 소명을 이루기 위한 순종과 헌신적인 삶의 롤모델임을 강조했다. 그녀의 시신을 해부한 이후에야 영양실조와 과로가 죽음의 원인이었다는 대목에서는 추모식장이 숙연해졌다.
서경석 목사는 서서평 선교사에 대해 자신은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며, 최근에야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거세게 불어오는 그녀에 대한 의문과 그녀 삶에 대한 경외감으로 마음이 무겁다며 한국 교회안에서의 자신의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에 많이 부끄럽다며 그녀를 추모했다.
서현교회 박은식 목사역시 어찌 77년 전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논할 수 있겠나며 그녀의 고귀한 순교자적인 희생을 통해 더욱 더 분발하여 한국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힘쓰자고 했다.
양국주 선교사는 남아프리카의 수단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며 선교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통해 한국교회가 작금의 어려움을 이겨내자며 아름다운 선교사역을 하고 떠난 서서평 선교사의 행적을 감사한다고 하였다.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날 아침 거기서 순례자여 예비하라 늦어지지 않도록 만나보자 만나보자 그날 아침 거기서...
유화례(florence root) 선교사의 수양아들이었던 안영로 목사의 마지막 축도를 뒤로하고 발길을 접는다. 1912년부터 1934년까지의 쉐핑의 삶과 소천이후 77년이 지난 지금 한국 기독교는 무한성장을 거듭하여 왔다. 이제 한국교회 안팎의 위기론이 대두되지만 교회는 더욱 성장하고 더욱 다듬어져 갈 것이 분명하다. 제 2의 쉐핑, 제 3의 쉐핑이 한국교회에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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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6/27 [09:59] 최종편집: ⓒ newspow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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