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기사글

손양원 목사 명예졸업장 기념관에 보관

투데이뉴스코리아 2018. 2. 1. 13:22







손양원 목사 명예졸업장 기념관에 보관
중동고총동문회, 여수시 방문 시장 등 만나 전달
 
강경구
여수 애양원 제 2대 담임 손양원 목사
▲ 여수시청에서 중동고총문동문회장과 회원들이 방문하여 졸업장 전달식을 진행하고 있다.     ©강경구  사진 : 여수종교문제연구소
헌신이나 순교와 같은 신앙의 절대적 가치들이 퇴색하고 있다. 요즘 기독교계는 언론이 발표한 종교간 지지도 발표로 옹색한 상황에 놓여있기도 하다. 지나친 대형화와 자본주의적 가치 우위를 선호하는 일부 오해의 소지들로 오히려 세상의 근심거리를 주도하는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는 안타까운 지적도 있다. 이러다가 교회가 안식과 쉼의 영토가 아닌 오히려 부와 성장을 위한 몸부림으로 복음의 본질을 잃고 좌초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성찰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여수 애양원 제 2대 담임목사이며, 1945년 여수 애양원 병원 원장을 역임했던 손양원 목사의 삶이 요즘 언론에 회자되고 있다. 신앙인이 아닌 일반인에게 조차 그의 삶이 가져다 주는 가치와 무게 때문일 것이다. 손양원 목사의 삶... 우리들의 오랜 신앙의 기반이 되주고 있는 그의 삶을 통해 순교라는 절대적 가치를 되새겨본다.

손양원 목사 삶의 가치를 복음과 섬김에 두었다.
▲ 2014년 2월 6일 95년 만에 손양원 목사가 모교였던 중동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 강경구
한센병 환자들을 놔두고는 피난 갈 수 없다던 그의 애절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우리들의 삶속에 도저히 두고갈 수 없는 절대적 가치들은 있는가? 가족, 아이들, 아내와 부모... 그리고 또 있는가? 아프고 병들어 움직일 수 없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와 가녀린 손을 내밀며 구원과 구조를 요청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현실은 냉정하고 갈수록 무정해지고 있다. 오래되어 녹슨 쇳덩어리처럼 단단해지고 무뎌진 가슴으로 이고 지고 가는 세상속에 그리스도의 죽음이 주는 의미는 과연 있는 것인가? 갈수록 미궁인 이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2014년 2월 6일 95년 만에 손양원 목사가 모교였던 중동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은 것이다. 가난과 눈물을 삼켜가며 포기했던 학업이었다는데...

100년의 세월이 주는 여전한 순교와 복음의 가치
▲ 그가 결국은 선택하게 됐던 원자탄같은 용서와 순교라는 초극의 선택 중심에 있었던 기독교의 예수그리스도를 가슴 절이게 느껴보고 싶은 날들이다.     © 강경구
1902년 경남 함안 출생으로 손종일 장로의 장남이었던 손목사는 7살 때부터 새벽기도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다. 어린나이에도 한일 합방 이후 강요되는 신사참배를 신앙심으로 거부했던 그는 겨우 칠원보통공립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인 1919년에 서울 안국동에 있는 중동학교에 진학했다. 낮에는 학업에 매진하고 밤에는 만두를 팔면서 고학을 했지만, 3.1운동 이후 부친인 손종일 장로의 독립운동으로 인한 옥살이로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가중되어 중동학교에서 키워가던 학업의 꿈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때가 1920년 4월 3일 이었다. 그의 맘속에 불어닥치는 역사적 광풍은 향후 그 삶에 신앙의 본질과 삶의 가치로 이어졌을 것 같다. 1919년 한 나라의 임금이었던 고종의 죽음과 이은 3.1 애국만세운동속에 마음 깊숙이 자리잡았을 안타까운 조국의 현실앞에 괴로워했을 그의 이글거리는 청춘의 가슴속을 다독였을 젊은 손양원이 불렀을 주님이 그립고, 그가 결국은 선택하게 됐던 원자탄같은 용서와 순교라는 초극의 선택 중심에 있었던 기독교의 예수그리스도를 가슴 절이게 느껴보고 싶은 날들이다. 탐험가인 리빙스턴(1813∼1873)을 사모하여 자신의 호를산돌로 삼았던 그는 1939년 7월 15일 당시 전남 여천군 율촌면 신풍리에 있는 나병환자들의 요양원인 애양원(愛養院) 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후 일생을 나환자들과 함께 살기로 결심하고 이름도 '양원'으로 고쳤다고 한다. 그 오매불망하던 주님의 이름으로 손양원은 삶이 아닌 죽음을,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모든 인생을 바치고 초개처럼 사라졌다.

목양과 신앙의 가치를 위해 살다 간 손양원 목사
▲ 13일, 손양원 목사 모교인 중동고총동문회 소속 회원들이 여수시를 방문하여 명예졸업장을 전달했고 여수시는 손양원 순교 기념관에 보관하기로 했다.     © 강경구  사진 : 여수종교문제연구소
독학으로 입학했던 평양신학교를 1938년에 졸업하고 부임한 여수 애양원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남긴 말들은 새길수록 깊은 의미를 주고 있다. “오, 주님! 이들을 사랑하되 내 부모 형제 처자식들보다 더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난국에 가장 급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양 먹이는 목자가 내 양떼 신앙을 지켜야지 더구나 몸도 성치 않는 나환자를 버리고 나 혼자 살자고 어디로 피난 가겠나.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
거칠게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정곡을 찔러대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아리게 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한다. 1939년부터 한센인 치료기관이었던 여수애양원과 애양병원에 근무하면서 병자들을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돌보았던 손양원 목사는 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아들의 친구가 두 아들을 총살하였지만 반란군이며 살인자였던 아들의 친구를 양자로 입양했으며, 1950년 9월 여수 둔덕동에서 순교할 때도 자신을 죽이려는 공산군을 위해 끝까지 기도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손양원 목사 기념관에 영구 보관되는 명예졸업장
▲ 손양원 목사의 중동고등학교 명예졸업장 수여는 제 17대 중동고등학교 총동문회(회 백강수, 중동 64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추진되었다.     © 강경구   사진 : 여수종교문제연구소
손양원 목사의 중동고등학교 명예졸업장 수여는 제 17대 중동고등학교 총동문회(회 백강수, 중동 64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추진되었다. 2014년 2월 6일 95년만에 받게된 고등학교 명예졸업장은 손양원 목사 기념관에 영구 보관된다. 손목사의 숭고한 순교를 기리는 후배들인 중동고등학교총동문회(회장 백강수)가 13일 여수시를 방문했다. 시청 상황실에서 다시금 손양원 목사의 명예졸업장 전달식을 가졌으며, 이들은 손양원 목사의 순교기념관 일대를 방문했다. 이날 행사에는 손양원 목사의 딸인 손동희 권사 등 유족과 총동문회 30여명이 참석하였으며, 김충석 여수시장에게 명예졸업장을 전달했다. 사단법인 민족지도자손양원목사기념사업회(이사장 박세훈) 위원 20여명도 함께하여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 여수교계는 이번 명예졸업장 수여를 계기로 한국 교회의 리더십이 이 사회와 교육계 속에서 더욱 건강하고 굳건하게 세워지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 강경구  사진 : 여수종교문제연구소
김충석 여수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여수시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손양원 목사는 희생과 화해, 용서, 사랑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신 분으로써 그 정신을 여수에 깊이 뿌리를 내려 여수가 순교성지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달라”고 했으며, 박세훈 이사장은 “명예졸업장이 기념관에 보관된 것에 대해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며,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이 무언지를 다시 한 번 묵상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수교계는 이번 명예졸업장 수여를 계기로 한국 교회의 리더십이 이 사회와 교육계 속에서 더욱 건강하고 굳건하게 세워지기를 기도한다고 했으며, 여수지역 교계가 더욱 기도하고 복음에 정진하는 소중한 전기를 마련하자고 했다.

그대... 조국을 위해 흘릴 눈물이 그대의 가슴속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는가? 그대... 예수를 위해 바칠 헌신이 그대의 신앙심 안에 조금이라도 꿈틀거리고 있는가? 조국교회의 회복을 목놓아 외치고 있을 원자탄같은 사랑이 가슴을 폭풍처럼 할퀴고 지나간다. 

여수 순교지 순례 안내
여수애양원과 손양원 목사 순교 유적지

▲ 1950년 9월 28일 순교한 손양원 목사 등을 기리는 순교비가 여수애양원 입구 부분 선교유적지에 세워져 있다.     © 강경구
1950년 9월 28일 순교한 손양원 목사(애양원 교회), 조상학 목사(덕양교회), 지한영 전도사(율촌 장천교회), 지준철 성도(지한영 전도사 장남), 윤형숙 전도사(여수제일교회), 허상용 집사(돌산읍제일교회)와 이선용 목사(구례읍 중앙교회), 이기풍 목사(우학리 교회), 양용근 목사(애양원 교회), 안덕윤 목사(김제 대창리 교회), 손동인 성도(손양원 목사 아들), 손동신 성도(손양원 목사 아들), 김정복 목사(소록도 교회)등을 기리는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당시 총살되었던 그들의 죄명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었다.

여수시 둔덕동 순교조형물과 순교기념비
▲ 여수시 둔덕동 전경이다. 여수새중앙교회 옆에 언덕위를 소담하게 서있는 순교기념비...     © 강경구
여수시 둔덕동 여수새중앙교회 옆에 소담하게 서있는 손양원 목사 순교장소에는 경남 함안 태생이며 경남노회 소속의 애양원교회 손양원 목사 외에 1950년 9월 28일 같이 순교한 율촌면 장전교회 지한영 강도사, 허상용 집사(돌산읍제일교회), 황도백 집사(우학리교회), 곽은진 집사(우학리교회), 안경수 성도(우학리교회), 백인수 성도(우학리교회), 장전교회 교회학교 교사와 성가대 지휘자로 헌신했던 지준철 성도(지한영 강도사 아들), 독립 만세를 외치다 왼팔이 잘려나가고 오랜 투옥으로 실명까지 한 여수제일교회와 여수중앙교회에서 사역했던 윤향숙 전도사, 46세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순천중앙교회를 세워 전남복음화의 초석을 다졌던 조상학 목사(덕양교회)등 10인의 숭고함을 기리기 위한 순교지도 같이 꾸며져 찾는 이로 예수의 사랑과 순교의 거룩한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상징 조형탑과 기도의 벽 등 조형물 17점과 조경시설 등이 갖춰졌고 옆에 있는 여수새중앙교회쪽으로는 기존 여수산돌교회가 1986년에 세우고 지금까지도 정성스레 관리해온 손양원 목사의 순교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1950년 9월 28일 순교한 손양원 목사등을 기리는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강경구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고구려대학 대체의학 겸임교수/노벨요양병원 보완대체의학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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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2/21 [00:32]  최종편집: ⓒ news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