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기사글

전남문협 박형동 회장, 시비 건립

투데이뉴스코리아 2018. 1. 29. 21:17






전남문협 박형동 회장, 시비 건립
장성 서삼면 대덕리 축령산 자락에 시비(詩碑) 건립
 
강경구
박형동 장로의 언어들이 시비로 세워진다.
▲ 지산교회 장로 들뫼 박형동 시인은 1949년 장성군 서삼면 대덕리 세포마을에서 출생 성장하였다. 이제 성장한 유년의 터에 시비와 체육공원이 세워진다.     © 강경구
장성군 서삼면 대덕리... 박형동 장로의 탯자리다. 가까이 축령산으로부터 밀려드는 12월의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하는 날씨다. 마주하고 있는 축령산 자락의 안산(安山)을 바라보며 잠시 긴 회상에 잠기는 그에게서 느끼는 유년은 할아버지가 심어 100년을 넘게 바라봐주며 자란 오래된 고목나무의 길게 뻗은 잔가지들 끝에서 느끼는 섬세함, 혹은 촘촘하고 짙은 그리움들이다. 그 오랜 그리움이 자라나 아름다운 시어가 되어 대덕리 세포 마을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전라남도문인협회 회장이 된 박형동 장로의 언어들이 이제 장성의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두고두고 읽혀질 것 같다. 같이 나고 자란 박모씨가 거금을 쾌척해 할아버지때 식재한 오래된 고목나무와 마을 정자 주변에 체육시설과 다섯개의 시비(詩碑)를 동시에 건립하게 된 것이다.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을 맥을 잇기 위해 노력
▲ 흥성대원군이 말하기를 '글(학문)은 장성만 하지 못하다(문불여장성)'라 했다는 데서 장성이 주는 문학적 깊이는 커진다. 서삼면 옆에 있는 추암마을 전경이다.     © 강경구

장성(長城), 긴 성이 많아 '장성'이라고 칭해졌다는 이 곳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유배장소였다. 흥성대원군이 말하기를 '글(학문)은 장성만 하지 못하다(문불여장성)'라 했다는 데서 장성이 주는 문학적 깊이는 커진다.
 
청백리의 표상 정해공 박수량(朴守良, 1491~1554년), 하서 김인후(金麟厚, 1510~1560), 고봉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조선말 위정척사파의 정신적 지주였던 노사 기정진(奇正鎭ㆍ1798~1879) 선생에 이어 근대에 이르러 최초의 희곡작가 김우진(金祐鎭, 1897년~1926), 다형 김현승(1913~1975)과 광주 문학발전에 쌍벽을 이루었던 박흡(1912~1962),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의 이상보(李相寶) 교수, 북한 계관시인이며 ‘다시는 헤어지지 맙시다’로 잘 알려진 오영재 역시 장성이 고향이다. 대한민국예술원 김정옥(金正鈺), 영화감독 임권택, 소설가 전병순, 방송작가 기일혜, 한학의 최고 권위자 변시연, 기네스북에 가장 오래도록 일기를 쓴 것으로 알려진 방래옥, 실제 14세부터 80세 타계할 때까지 4개국어로 일기를 쓴 것으로 알려진 김병효 씨 등 장성은 역시 여전한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장성문학대과 집필하여 완성 눈앞
▲ 박형동 장로가 장성문협과 전남문협 회장 임기중 내놓은 제법 어렵고 묵직한 작품이다. 장성문학대과의 짜임새 있는 구성과 완성도를 향한 기도의 마음으로 간절해져있었다.     © 강경구
우리나라 최초의 희곡작가 김우진(金祐鎭, 1897년~1926) 선생은 사의 찬미로 알려져 있으며, 윤심덕과의 사랑이 파국으로 이어진 영화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김우진 이전의 극들을 신파극이라 하고, 김우진 이후에야 비로소 신극의 면모를 갖췄다고 했으니 그의 문학성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11살때 목포로 이주하였기에 목포에서 더욱 김우진에 대한 애정을 강조하는 이유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김우진으로 시작된 150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수록한 800페이지 분량의 원고가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우진 선생 이후 150명의 작가가 어우러진 장성문학대과가 바로 그것이다. 박형동 장로가 장성문협과 전남문협 회장 임기중 내놓은 제법 어렵고 묵직한 작품이지만 고향땅 대덕리에서 서삼면 일대를 쳐다보는 그의 마음은 이미 다음 과제에 대한 구상과 장성문학대과의 짜임새 있는 구성과 완성도를 향한 기도의 마음으로 간절해져있었다.

지산교회 장로 들뫼 박형동 시인은
▲ 서삼면 대덕리 세포마을에서 같이 나고 자란 박모씨가 거금을 쾌척해 할아버지때 식재한 고목나무와 마을 정자 주변에 체육시설과 시비(詩碑)를 동시에 건립하게 됐다. 그곳에 서서...     © 강경구
1949년 장성군 서삼면 대덕리 세포마을에서 출생 성장하였다. 광주경신여고 등에서 평생 교편을 잡았으며 문학춘추작가회장, 시류문학회장, 장성문협과 전라남도문인협회 회장 등을 거쳐오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저서로는 ‘아내의 뒷모습’, ‘대답하지 않아도 부르리라’, ‘바보의 노래’, ‘껍데기를 위한 항변’등 다수가 있으며 전남문학상, 전라남도지사 공로패, 광주시민대상, 옥조근정훈장 등을 수여받았다.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고구려대학 대체의학 겸임교수/노벨요양병원 보완대체의학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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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2/30 [17:25]  최종편집: ⓒ news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