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기사글

‘희망’ 이야기했던 곽정숙 전 의원의 마지막 길

투데이뉴스코리아 2018. 1. 24. 17:58






‘희망’ 이야기했던 곽정숙 전 의원의 마지막 길

그녀의 화려한 이력 뒤에 감춰진 ‘장애’로 인한 아픔과 오랜 고난의 삶
23일 영락공원에서 하관예배…눈물과 아쉬움 속 찬양과 기도 드려져
서현교회 담임 박은식 목사 “그녀 안에 기쁨의 원천 통해 위로받으시길”

2016년 03월 24일(목) 18:12
21일 장례식장에서 그녀가 평생 외쳤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故 곽정숙 전 의원
[기독미션=전남도민일보]강경구 기자= ‘장애인과 연약한 사람들의 벗’ 곽정숙 의원의 장례예배가 지난 21일 천지장례식장에서 많은 장애인들과 지인들이 모인가운데 드려졌다.

지난 18대 국회의원(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광주광역시 인권옴브즈맨,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한국실로암선교회 회장, 오월여성상 수상 등 화려한 이력 뒤에 감춰진 그녀의 장애로 인한 아픔과 오랜 고난의 삶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3월의 대지는 온통 하얀 꽃과 노란 개나리꽃들이 가득 가득 시야에 들어왔다. 장례예식이 열렸던 매산동에서 23일 영락공원 장지까지 숨죽인 고 곽정숙 의원의 오랜 친구들인 장애인들과 그녀와 함께 새로운 사회를 향해 호흡했던 비장애인들이 기꺼이 동승해주었다. 길고 긴 하루... 우리는 그녀를 이렇게 보내야 했다.

박은식 목사(서현교회)가 오랜기간 서현교회 협동전도사로 섬겼던 고 곽정숙 의원의 삶에 대한 추모를 설교와 기도를 통해 회고했고,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눈물흘리던 참가자들을 뜨겁게 위로했다.

●곽정숙 의원이 외쳤던 열정의 메아리

광주서현교회(박은식 목사) 복지대학 종강교육이 있었던 지난 2014년 11월 서현교회에 다녀왔었다. 양림동에서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광주교회사의 한축을 간직하고 있는 100년 교회 역사의 유서 깊은 서현교회에서 노인대학인 복지대학을 담당하고 있었던 곽정숙 전도사를 만날 수 있었다.

반가운 얼굴로 지난 18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었던 곽정숙 협동전도사와의 만남은 항상 기쁨을 주는 순간이다. 의원활동을 마감하고 다시 현장에서 전도사로 살고 있는 곽 전도사는 그동안 간암이라는 투병생활에도 흔적 없이 말끔한 얼굴로 어르신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곽정숙 의원이 남긴 희망의 기도를 이어가자.

2014년 9월 페북에 “또 다시 기도요청를 부탁하며”라는 글을 통해 “항암약물치료를 위해 입원했습니다. 간암 확진 후 세 차례 수술했는데... 이번엔 폐에 전이가 되어 수술 불가상태로 약물치료 처방에 따름입니다. 관건은 체력이라는군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치료받을랍니다. 식욕이 잘 유지되어 능히 이길 체력이 있고 의료진의 섬세하고 애정어린 처치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지만 “이따금씩 찾아드는 통증과 불면 때문에 걱정”이라는 글을 읽으며, 달려간 곳에서 오히려 그녀는 더욱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고 계셨다. 그러나 나는 한마디 한마디 그녀와 말을 들으며 돌아나오면서 마음 깊은 곳이 복잡한 상념들로 이루말할 수 없이 답답해지고 말았다.

●그래도 웃고, 또 웃으며 격려하는 신앙의 사람 곽정숙

그녀의 손을 잡았다. 선뜻 가녀린 손목이 잡혔다. 한송이 수선화같은 누님의 얼굴로 언제나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었던 곽정숙 의원의 눈빛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함이 가득한 눈빛에서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그 슬픔을 이겨내는 무한한 의지를 읽었다. 누굴까? 그녀의 손 끝에, 눈빛에, 온통 희망과 격려로 안아주고 싸매어주는 이...
간암 말기 투병 중에도 차별 앞에 우뚝 섰던 곽 의원.

●곽정숙 의원이 남긴 유고 일기<삶의 일기>에서

“몸을 움직여 조금만 물건을 잡으려다가 힘이 들어 식은땀이 흐른다. 평상시에 생을 유지하는 활동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몰랐다. 생을 이어가는 호흡하기, 수저들기, 화장하기, 쉽기만 했던 일상들... 만유의 주재께서 조절키를 작동하시기에 물 흐르듯 쉬웠던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일을 댓가없이 수행해준 섭리 앞에 새삼 감사다.”

그녀의 손 끝에 쥐어진 펜과 붓이 온통 노랑 희망을 색칠하고 있다. 그녀는 <비밀>이라는 일기에서는 “이 한밤중 하나님과 나 사이의 비밀을 확인하고 가슴이 뛴다. 죽음을 넘나드는 육체의 고통의 병상에서 뛰는 가슴으로 인해 잠을 깬다. 비밀이다.”

그녀의 전시회에서 떨리는 손을 잡았다. “우리 차 한 잔 하시게요? 언제 다시 뵐까요?” “그렇다.” 언제든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차별’이라는 단어와 ‘투쟁’이라는 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지금... 나는 가녀린 몸을 이끌며 대한민국 땅을 오고가던 그녀를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녀의 오기와 뚝심이 많은 이에게는 희망이 되었다. 지금도 그 희망은 여전히 존재하며 나를 이끈다. 당시 나는 “힘내시라! 용기를 잃지 마시라!!” 기도하고 또 기도했었다.

●그녀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권오용 씨는 “고 곽정숙 카미 고문님(18대 국회의원)은 정신장애인들을 사랑하셨고 카미가 창립될 수 있도록 도와 주셨고 이후에도 카미의 활동과 발전을 위하여 항상 도와 주셨던 진실한 크리스찬으로 카미의 친구였습니다.”라고 했으며, 이희정 씨는 “울지않겠습니다. 대신해서 영원히기억하겠습니다! 당신께서 걸어오신 그길을 잊지않겠습니다. 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라고 했다.

구순옥 씨는 “기어코 곽정숙 의원님 하늘 나라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라며 아쉬워했으며, 장애인 활동가인 강경식 씨는 “어둡고 낮은 곳에서 민중과 삶을 함께 했었던 작은 거인이다”라고 그녀를 추모했다.

●3월 23일 오전 9시 하관예배 통해 나눈 마지막 인사

그녀가 떠났다. 슬픈 인사를 나눌 수 없다. 어차피 언젠가는 다시 만나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이 지니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면서 그녀 안에 잠재된 끝없는 아픔과 절망을 희망으로만 바꿀 수 있었던 원천은 그녀가 지닌 ‘오직신앙’의 힘이었다.

화사하게 웃고 계시는 영정 앞에서 다시한번 가녀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누님... 편히 가세요...”“전도사님... 의원님... 여성장애인연대 회장님... 누님...” “어느것 하나 부끄럽지 않으셨던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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