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기사글

민족복음화에 전생애 바친 유성 김준곤

투데이뉴스코리아 2010. 10. 5. 15:31

 

부친과 아내와 딸을 죽인 공산당을 용서하다

 
강경구
민족복음화를 외친 유성 김준곤의 절규!

 
神과 인간이 아닌 당신과 나,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같은 꿈을 꾸고, 똑같은 아쉬움을 마음에 나누며 보낸 시간들이 아쉽고 그립기만 하다. 한가닥 추억의 편린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아버지! 김준곤... 민족복음화! 예수 그리스도... 목사님.... 이 땅 어디를 가도 당신의 흔적은 예수님처럼 남아 마음엔 때로 솟아오르는 눈물이 되고 피맺힌 절규가 되고 외쳐도 외쳐도 지치지 않는 열정을 주는 이름이 됐다. 백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백번 다 예수그리스도! 라고 외치게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백발의 노구를 이끌고 오장(五臟)에 숨어있는 암덩어리마져 예수의 심장 속에 숨겨버리고 혈혈단신 전국의 방방곡곡을 다니셨던 이유도 바로 예수그리스도였다. 통증으로 길고 길었을 밤을 무엇으로 달랬을까? 허기지고 메말랐을 입술을 송두리째 이루고픈 민족복음화에 대한 애절함의 물기로 적실 때마다 드렸을 감사와 글귀들이 그립고 그립다.
그 어떤 학문도, 직업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라하셨던 이유를 어느날 발견하고부터 삶은 어찌나 재미난 세상이었던가? 그때 알았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달리 이유가 없음을... 사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꿈꾸는 것도,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임을... 한 해의 뜨거운 여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장마전선은 남해에 머물렀고, 만 명, 이만명이 입석, 심천의 나무그늘에 모여, 수만명이 태안앞바다 꿈꾸는 몽산포에 모여, 아니 어느 한적한 시골의 지방캠퍼스에 모여 찬양하고 예배 드릴 때도 여전히 당신은 모든 것의 이유를 예수 때문이라고 했다. 당신의 이름 석자 앞에 예수를 닮은 사람, 예수 때문에 살았던 사람, 예수의 삶을 꿈꿨던 사람으로 기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때문으로 바꿔가기가 너무도 버겁고 힘든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돈과 힘이 필요한 시대, 배경과 조직, 학연과 혈연이 필요한 시대에서 그 어떤 올바른 삶을 묻는 질문에도 쉽게 대답을 얻지 못하는 세상을 살면서 추억 속에 아무렇게나 꾸겨져있는 삶의 가치를 발견해야 할 때다. 청년 나사렛의 영원한 아버지 김준곤, 그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밖에는 도무지 없다고...

  

가녀린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 예수 그리스도...

 
어머니처럼 하나밖에 없는 내 조국/ 어디를 찔러도 내 몸같이 아픈 조국/ 이 민족 마을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사회의 구석구석/ 금수강산 자연환경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저음의 목소리가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절제되고 정제되어 언어마다 삶이 꿈틀거리고 생명이 역동했던 당신의 그 떨리는 음성을 마음에 담는다.
▲ 85년을 사는 동안 마음을 온통 민족복음화에 둔 유성 김준곤... 일평생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뿌리신 눈물의 씨앗을 머금고 제자화와 민족복음화에 동감하는 우리들의 잠궈진 마음을 열고 그 안에 용해된 생명의 물을 퍼올릴 때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은 아닐까?     © 강경구

1950년 10월... 사랑하는 아내와 딸, 부친이 북한 공산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에도 유성은 가족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기보다 혼란한 나라의 모습에 애통해 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족을 잃은 비애와 비통에 앞서 통한의 마음을 저미고 찾아간 곳은 당시 신안군 지도 지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양떼들이라고 부르면서 용서해 주자고 했던 김준곤 목사. 빨치산인 그들을 계엄사로 보내면 모두 사형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눈 빛 속에 예수의 마음을 심고 예수의 십자가를 담았던 당신의 사랑의 결단은 평생 민족복음화에 대한 열정의 기반이요 능력이 됐다. 그 당시 120여명의 좌익들은 현재 대부분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그 중에는 장로로 임직하여 헌신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6·25 때 김준곤 목사의 부친과 부인이 좌익들에 의해 학살을 당하고, 김 목사도 학살 직전에 극적으로 살아났던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한 김곤근 선생(81세, 당시 신안 경찰서 지도서장)의 증언은 듣는 이로 가슴을 여미게 한다.

당시 신안군 지도는 좌익들의 천국이었고, 빨치산에서 활동하던 120여명의 좌익들이 지도를 완전 장악하고 무상 배급제도를 시행할 정도였다고 하니... 밤이면 죽창과 돌로 양민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광란의 섬이었던 그곳에 젊은 청년 김준곤이 있었다. 

  

 

 

 

 

 

 

 

 

 

 

 

 


죽음의 밤 김준곤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칠흑같은 밤이었다. 별빛도 달빛도 전등빛 하나도 숨쉬지 않던 밤이었다. 흔한 벌레들마저도 숨죽였던 모질고 험한 밤이었다. 목숨을 건 탈주...
 

▲ 1950년만 아니었다면, 6.25만 아니었다면, 정말 아름다웠을 바다와 파도와 바람이 아롱지던 섬마을 신안, 지도...     © 강경구
 
그렇지만 지옥은 멀리 있지 않았다. 동족간에 겨누는 총칼의 위협과 만행은 한반도를 비극의 지경으로 몰아가지 않았던가?
1950년 10월 5일에는 문준경 전도사가 공산주의자들에게 다시 체포되어 증동리 백사장에서 새벽,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란 죄명으로 몽둥이와 총에 맞아 59세로 순교한 날이다.
유성 김준곤에게 맨 처음으로 예수님을 소개해주었던 문준경 전도사는 김준곤 목사 부친의 외사촌과 결혼하였던 친척이었다. 김준곤은 그녀를 내 시골 이모님 같은 분이시고, 천국에 가면 제일 먼저 나를 맞아주실 것 같은 분으로 소개했다. 그 숨막히는 죽음의 극한 상항을 김곤근 선생은 김준곤의 마음이 되어 이렇게 증언했다. 

하늘도 나를 도와 비가 내렸고 땅도 나를 도와 칠흑 같은 길을 만들어 주었고 연약한 내 몸에서 힘은 어디서 용솟음쳤던가, 그 모두가 영적인 발동에 감사하면서 산인지 밭인지 논인지 뛰다보니 불빛은 저 멀리 나를 따르고 "반동 잡아라" 소리는 부슬비 내리는 적막을 깨며 내 귀를 물어뜯곤 하였지요. 물 빠진 바다는 나를 반겨 도랑을 주고 그 도랑은 구덩이를 만들어, 나를 안겨준다. 뻘은, 나를 감싸주는, 위장의 옷이 된다. 하늘은 버리지 않고, 계속 비를 내려, 바다에 오는 사람들을 막아준다. 조수의 간만을 따르면서, 목은 취지 못하여도, 파래와 조개는 허기를 도와 70여 시간을 버티게 한다.

살아 돌아온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아이러니 하게도 용서였다. 120여명의 빨치산에 의해 장악된 신안의 섬 지도가 김곤근 선생(81세, 당시 신안 경찰서 지도서장)에 의해 1950년 10월 17일 오후 1시 다시 회복되어 기적적으로 생존한 김준곤 목사가 김곤근 지서장을 찾아가 한 일은 바로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영광 염산교회 순교자들을 위한 헌시

 
▲ 1951년 영광 염산에서는 설도항 인접 염산교회에서만 77명이 순교하였다.     © 강경구

하로밤 사이에 휘리 바람처럼 / 붉은 군대가 지옥의 나라에서 / 쏟아져 나오든 날 /
평화의 목장 / 어린 양무리 / 사망의 나례밑에 / 물리고 찌끼고 짓밢였도다 /
어두운 밤 질식의 시야 / 아이야 숨소리 죽여라 / 바람도 자라 / 햇빛 가리워라 /
숨켜만 다오 / 김일성이다 내무소원이다 / 생명아 번데기처럼 속에서만 숨쉬라 /
피에주린 살인마들 / 젓먹이 안고 업고 / 내 어머니 내 아버지 /
도살장으로 학살의 골짝으로 / 소처럼 개처럼 / 숙정가 발마추워 / 말없이 끄을려 갔도다 /
돌․매․창․칼 / 모진 아픔 아래서 / 오 - 주여 / 쓰러지는 신음소리 /
악마들 어이 이리 잔인하고 / 독사들 어이 이리 독할건가 /
듣는가 친구여 / 칠십 생령의 피의 호소를 / 바다야 산들아 울자 /
하늘이여 보시고 땅들아 잠자지 말라 / 오늘 이 고장에서 / 나와 같이 통곡하자 /
누가 비저낸 비극의 장이든고 / 누가 뿌린 죄의 씨드냐 / 누가 쌓은 파멸의 탑이더냐 /
아 - / 싸움의 종자 / 권력상쟁 끄칠줄 모르드니 / 기여이 생혈을 강같이 흘리었으니 /
행악의 종자여 피흘린 백성이여 / 그대 아즉도 뉘우침이 없는가 /
평안이 쉬라 형제여 자매여 / 눈보라 가시길 기나긴 겨울이 가면 / 아즈랑이 맴도는 /
평화의 봄이 이땅을 차즈리니 / 피흘린 발자욱마다 / 향기로운 승리의 꽃물결 이루고 승리/ 꽃가루 안개같이 무너져 / 나비와 별도 나라오고 / 사람 사람 다 향기로워 / 독사도 사자도 암사슴되고 / 아이 독사굴에 손을 넣는 날 / 범이 초식을 하는날 /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 환이에 봄은 / 평화의 소식가지고 / 저녁노을같이 /
이 피흘린 땅을 더 무리니 /
영광을 누리시라 안식을 누리시라 / 뼈앞은 현실 괴롭히는 죄도 / 사망도 다 지나가고 /
눈부신 환희․안식․생명만이 / 넘치리라 / 피에부쳐 기도하는 땅 /
찌낀 살 맞은 뼈 마디 마디에 / 순교의 결실 / 백배 천배 거둘것 많겠네 /
님들 가신골고다 / 피묻은 자욱 가시길 헤치며 / 뒤따르는 무리 구름같이 미려나리니
기리 기리 영광을 누리시라 / 평안히 쉬라 /


1951년 10월 26일 김준곤 목사 염산 교회 합동 추모식에 올림

  

1950년의 뼈아픈 역사는 잠자고 있는 백두산 화산처럼 다시 피어오를 수 있다. 

▲ 2008년 12월 29일 강화 성산 예수마을에서 열린 c.c.c. 서울지구 금식수련회에서 설교하시는 장면이다.     © 뉴스파워
백두산이 화산활동으로 인해 터지게 되면 북녘땅은 온통 물바다가 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김씨 왕조의 세습과 권력집착은 아직도 한반도에 잠재한 전쟁의 망령일 수 있다. 칠흑같은 어둠을 뛰고 뛰어 도망쳐야 할 죽음의 때를 안고 사는 우리들이다. 1950년 6월 25일 동족간의 전쟁이라는 치명적인 오류를 안고 살아야 하는 한반도는 찢어진 생살처럼 아픈 흔적을 도처에 남기고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아픔과 그리움과 보고픔을 간직하고 살고 있다. 정치적 술수와 오만한 권력쟁투의 그늘에서 잠깐잠깐 고개를 내미는 햇빛처럼 속태우며 간지럽게 이산가족 상봉과 화해라는 회유를 선택하는 못난 자화상이 2010년 한반도의 그릇된 자화상이다.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고뇌의 밤... 똥거름 속에 육신을 맡기고 죽음의 운명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연약한 인간의 마음으로 섰을 때의 나의 모습을... 김준곤의 제자화 훈련을 통해 예수 사랑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감격과 첫사랑이 있는 당신이라면 죽음과 맞선 청년 김준곤의 모습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만난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화해와 용서를 외쳤던 김준곤의 모습에서... 칠흑같이 덮힌 삭은 녹들을 떨어버리고 무뎌진 민족복음화의 날을 세울 수 없다면, 지금 우리는 잘못된 제자의 길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2010년 10월은 중반을 향해 치닫고 청년 나사렛의 아버지 유성 김준곤은 이제 말이 없다. 그렇지만 그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문준경 전도사와 천국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여전히 기도하고 기도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절대를 다시 배워야 할 순간이 오고 있다.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조선대학교 대체의학과 초빙교수/광주여자대학교/송원대학교/서영대학/고구려대학/빛고을노인건강타운/효령노인건강타운 강사
 
기사입력: 2010/10/05 [02:17]  최종편집: ⓒ news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