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기사글

200일간 100여명 전도한 구청장

투데이뉴스코리아 2010. 8. 21. 16:26

 

늘사랑교회 초대장로 황일봉 전 광주 남구청장 파워인터뷰
 
광주=강경구
늘사랑교회 초대장로 황일봉 전 광주 남구청장
 

▲ 광주 남구 진월동에 조그마한 공간에서 황일봉 장로를 만났다. 난초에게 물을 주는 마음에서 인생을 배우신단다...     ©강경구
 
예장 합동 광주 봉선동 광주늘사랑교회(빛고을노회 이종양 목사) 초대장로 황일봉 장로를 만났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남구청장 3선에 도전했지만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황 후보는 “진월·효천지구 개발로 인구 30만명의 명품도시를 조성하겠다”며 “8년 동안 효사랑 정책으로 최고 수준의 노인복지를 이뤘으니 이제는 양육과 교육을 아우른 아동복지의 본보기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지만 일단은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됐다.
오늘은 정치인으로서가 아닌 늘사랑 교회와 목양을 섬기는 장로로서 그를 만나로 가는 날이다.
인터넷 검색을 장식하는 효(孝)사랑이라는 단어를 우리들에게 익숙하게 만들어준 인물이며 광주 남구 양림동 일대에 산재한 기독교 선교 유산을 우리들에게 더욱 가까이 연결해준 장본인기기도 하다.
요즘 근황을 묻자 자신을 흔히 말하는 '백수', 하루 놀고 하루 쉬는 일정이라고 소개했지만 얼마 전 장만한 스마트폰으로 트위터에서 청소년들과 대화방을 만들어 대화의 창을 열어가는 등 하루도 쉬지 않는 열정의 사람이다. 9월 초당대학에서 '청소년 범죄론'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는 등 황 장로에게 하루는 짧기만 하다. 


직무정지 기간동안 물 만난 고기처럼 거리 전도를 했고...
 
황일봉 하면 재직 당시의 남구를 효사랑이라는 브랜드로 이름을 알렸으며, 세계에서 가장규모가 크고 잘된 노인복지시설인 빛고을 건강타운을 유치, 여기에 아이사랑이란 이름으로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높이는 일에 전력했다. 노인복지 기여 공로로 2010 대통령 기관표창을 받았으며 전국에서도 복지하면 효사랑 남구라는 명성을 얻었다.

▲ 그동안 수상한 각종 기념패와 감사패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제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강경구
하지만 이제 그는 8년간의 타오른 열정을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새벽기도와 공적인 예배를 빠트릴 수 없는 장로의 신분으로 교회의 제직들과 당회를 섬기고 목양의 중심에 서있는 목회자를 돕고 교회의 방향타를 위해 무릎으로 살아야 할 순간인 것이다.
지금의 늘사랑 교회를 섬기고 현재의 교회 터(구 봉선동 겨자씨교회)로 옮겨 올 때 까지만 해도 교회 증축과 건축의 목표점은 멀게만 보였다. 당시 집사의 신분으로 남구청장직을 수행하면서 교회의 성장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그가 당한 일이 남구청장직 수행정지라는 법원의 결정이었고, 6개월간을 남구청을 떠나 있어야 했다. 
▲ 황일봉 장로     ©뉴스파워 강경구
그때 황일봉 장로는 물 만난 고기처럼 거리 전도를 했고 예수를 전혀 믿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200여일간 수백명을 만났고 그중 100여명이 교회에 나와 예수를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작은 기적을 만들어 냈다. 늘사랑교회가 만든 이 기적을 통해 지금 교회는 중형 교회로 이전하였고, 다시금 제2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목회자와 성도들이 함께 힘을 쏟고 있다. 

  
광주 남구 기독교 선교 유산에 대한 애정
 
그는 운동권이었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인 벌교가 고향이며, 벌교중학교를 졸업하고 전남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민주화운동 관련으로 퇴학당했다. 고교시절 군사정권과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교내시위를 주도했다니 일찌거니 민주화에 눈을 뜬 그에게 세상은 캄캄한 암흑이었을 것이다.
퇴학 후 실의와 좌절에 빠져있던 그에게 따뜻한 미소와 격려로 다가오신 분이 민중 시인이며 당시 전남고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던 문병란 선생이다. '너는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일을 했다. 실망하지 말고 공부를 계속해라'라고 말씀하시며 등을 다독여 주셨던 문병란 시인의 직녀에게는 그가 즐겨 외우고 낭송하는 시이기도 하며, 그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은사를 보호하기 위해 동명동 농장다리에서 한쪽 눈을 영구 실명하는 불운을 안았지만 그에게 실명은 작은 상처요 목표를 확고히 하는 생의 기반이 되주었다.

 남구청장 재직당시 평소 사랑하고 존경했던 문병란 선생을 모시고 스승의 스승인 김현승 시인의 시비 제막식을 함께 하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1959년 현대문학지에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꽃밭>,<가로수> 등으로 등단한 문병란 시인에게도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 광주 남구 호남신학대 내 김현승 시인의 시비를 건립하고 스승인 문병란 선생과 차종순 호남신학대학 총장등과 함께.     ©효사랑

현재 남구 양림동 일대는 기독교 선교 유산의 보고로 기독병원, 수피아고, 호남신학대학 내 선교사 묘지, 사직도서관 앞 선교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양림교회 등이 있어 문화적 가치와 효율을 점검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
황일봉 장로는 구한말 광주에서 태어나 근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운동과 독립운동을 펼친 오방 최흥종 목사에 대한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방림1동 주민센터에서 봉선2동 무등1차 아파트 입구까지 약 1킬로미터의 거리를 '오방로'라고 명명하는 등 오방 최흥종 목사의 잊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재조명과 관심을 갖게 하기도 했다.

▲ 오방 최흥종 목사의 기념로를 만들며 기념사를 하고 있다. 최흥종 목사의 사랑의 삶은 재조명 되어야 한다.     ©효사랑
 

인생지표가 돼 주었던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여호와가 내게 준 땅에서 내 생명이 길리라는 그의 삶의 좌표가 되는 말씀이다. 2004년 성균관 효자상, 2005년 제8회 효령대상, 2008년 (사)한국효도회 효자상, 2009년에 장애인 인권상을 수상하는 등 효와 인권, 이웃사랑과 섬김은 그가 예수를 영접하고 장로로써의 삶을 살아가는 순간부터 더욱 분명해졌다고 봐야 한다.
좋아하는 존경하는 인물로는 요셉을 뽑았다. 정치인으로서 어려운 역경이라 할 수 있는 지금의 모습에서 정치적 소신으로 인한 단절과 관계로부터의 외면이 구덩이에 빠진 요셉을 보는 것과 같았지만 요셉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성실히 살았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졌던 것처럼 지금은 그의 한결같은 신앙과 노력만이 중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쩔 것인가? 물은 흐르고 역사는 흘러가고야 마는 것을... 똑같은 자리는 아니지만 언제나 다시 내 앞을 지나가는 역사의 물줄기는 노력하는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할밖에... 역사의 여러 교훈을 통해 이미 배우고 있지 않는가?


 
▲ 구청장이 되기 전부터 맡아온 남구사회복지협회장과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광주시지회장을 맡고 있다.     ©강경구

황일봉 장로는 매일 달리기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42.195킬로의 마라톤이 그의 취미이다. 15회를 완주했고 하프코스는 수십여 차례 완주했다. 24시간을 달리는 100킬로의 울트라마라톤은 2회나 완주했다. 인생의 마라톤은 길기도 하지만 복잡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의 속성상 지금 어느 누가 진정한 승리자라 할 수 있겠는가?
이제 그는 다시 달려야만 하는 기나긴 마라톤 코스 앞에서 몸을 풀고 있다. 이제 그의 이름 석자 앞에는 장로라는 어쩌면 정치인으로서는 불편 할수도 있는 명함이 하나 더 달려 있다.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조선대학교 대체의학과 초빙교수/광주여자대학교/송원대학교/서영대학/고구려대학/빛고을노인건강타운/효령노인건강타운 강사
 
기사입력: 2010/08/21 [17:33]  최종편집: ⓒ news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