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기사글

문준경 다시한번 그녀를 생각한다

투데이뉴스코리아 2010. 8. 6. 23:53

 

낙도의 순교자의 기도 응답이 만들어 놓은 회복의 가교 증도대교
 
증도=강경구
문준경 다시한번 그녀를 생각한다.
 
뜨거운 여름날, 내리쬐는 볕은 불볕이요... 용광로와 같다. 부는 바람 안에는 뜨거움이 넘실대고 이내 가슴은 타내린다. 증도... 마음안에 늘 피어 오르는 한 송이의 꽃처럼 기다려지고 보고프던 꿈의 섬, 문준경이라는 여성의 삶의 애환이 둥실 둥실 구름떼처럼 피어오른 곳에 와있다. 광주에서 길게 잡아 1시간 30분... 증도대교의 개통으로 이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되었다.
▲ 신안군 증도 문준경 전도사님의 순교현장에서 바라본 백사장과 끝없이 펼쳐진 순백의 구름을 바라본다.     ©뉴스파워 강경구
긴 해안가 개펄의 끝은 요원하고 갈매기도 날아오르지 않는 한낮 34도의 불볕더위 속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가 누운 곳에 잠시 시선을 떨구고 겨눈 총구멍 앞에 서있었을 그녀를 생각했다.
2010년 8월 오늘을 사는 어느 누군들 그 순교의 현장, 죽음의 구덩이에 내던져질 자신의 얼굴을 그려볼 수 나 있겠는가? 멀리 우전리 해수욕장에 몰려드는 인파를 바라보는 마음안에 그려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못내 아쉽고 슬프다. 결코 길지 않는 인생을 살면서 떳떳하지 못하고 계획하는 것마다 인간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지...

내 신앙의 원초, 문준경 전도사님 - 김준곤 목사님의 회고<한국ccc 설립자> 
 

"열한 개 섬을 24시간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나룻배를 타고 건너다니셨다. 그 분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나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섬사람들에게 그 분은 예수의 증인이었고 편지였다.
공산당이 들어오면서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사람들은 빨갱이로 변신하여 온갖 박해와 폭행을 자행했다. 6.25 직전에는 예레미야의 '북에서 남으로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경고를 하며 어느 여인보다 많은 우국의 눈물을 흘렸다. 그 분은 자신의 순교를 예감했는지 미리 관을 짜놓고 수의를 손수 만들어 놓았었다.
▲ 문준경 전도사    
어느 집으로 시집을 갔더라도 현모양처였을 분. 착하디 착하신 집사님, 충성스런 여 전도사님, 갈릴리에 태어났더라면 막달라 마리아와 수산나와 요안나와 함께 주님을 섬기다가 십자가 밑에서, 주의 무덤가에서 울고 있었을 분. 내가 부탁하면 대신 죽기라도 해주셨을 문준경 전도사님... 중동리 백사장에 피흘려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가 중국 땅에 일억 배로 퍼지소서.
이 작은 글을 통해 나의 추모와 사랑과 존경을 문준경 전도사님의 영전에 드립니다. 또한 문 전도사님이 제게 심으신 믿음의 씨앗을 퍼뜨려 10만명 대학생을 중국 땅에 보내고 싶습니다."

회복은 누구에게 적용되어져야 하는가? 부흥과 선교를 열망하며 접니다! 접니다! 하고 일어섰던 바로 내가 먼저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나... 삶과 현실에 찌들려버린 21세기 자본주의의 한 축속에 궤멸된 어제의 용사가 되어버린 이 땅의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을 외치고 외쳤던 젊은날의 바로 나 말이다.
 
지금은 우리 신앙의 원초를 회복할 때
▲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의 삶과 예수제자의 삶이 용해되 있는 증도면의 초입 증동리 교회 첨탑를 바라보며 윤동주의 시 십자가를 생각했다.     ©뉴스파워 강경구
바람부는 바닷가? 해당화의 꽃은 무작위로 흔들리고 땅바닥에 나앉은 가녀린 양심을 주체못해 흔들리는 채송화의 회복을 여망하는 긴 기다림의 끝은 언제쯤 올까? 생각해보면 어느 누구인들 거창한 꿈 한번씩 꾸어보지 않았겠는가? 메마른 가슴에 시원한 폭포수 같은 해갈의 은혜라도 누려보고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증도 구석구석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녀의 흔적을 쫓는다. 열한 개의 섬을 24시간 발품을 팔아 돌아다닌 이유는 한 가지 오직 예수였을 그녀의 삶의 노래와 삶의 모든 것이 용해되어 있는 증도.
사형장인 모래사장에 문 전도사와 함께 포승 줄에 묶여 끌려갔던 생존자 김두학 장로(증동리교회, 당시 청년)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고 한다.
"공산군은 1950년 10월 5일 새끼줄에 묶은 채 문 전도사님을 이곳으로 끌고 온 후 죽창으로 찌르고, 발길로 차며, 총대로 죽음에 이를 정도로 후려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문 전도사님은 '나는 죽이더라도 백정희 전도사와 성도들은 죽이지 말라'고 간청하였다. 모래사장에 끌려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공산군은 '너는 반동의 씨암탉 같은 존재이기에 처형한다'며 문 전도사님을 창으로 잔인하게 온몸을 찔렀지만 숨이 끊어지지 않자 숨통을 끊는다고 하며 목에도 총구를 대고 총살하였다."

▲ 석판에 새겨진 순교 당시의 모습... 멀리 중동리 앞바다를 주시하는 그녀의 입에서 퍼져나왔을 예수정신... 예수사랑...     © 뉴스파워 강경구
우리 신앙의 회복을 열망했을 그녀 기도의 응답.
눈을 감고 바다를 본다. 먼 하늘 몽실되는 구름이 하얗다. 빠져나간 물처럼 썰렁한 우리들의 신앙의 순수와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끈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물이 들면 다시 이곳은 바다의 꿈으로 가득차고 끝없이 메아리칠 그녀의 소리가 파도처럼 울려나갈 것이다. 일어나라고... 어서 가라고... 손짓하는 그녀의 여리지만 강렬한 눈빛을 확인하고 발길을 돌린다.
길고도 힘들었을 신안 앞바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타는 가슴 불타는 심장으로 전했을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찾아 순교신앙의 순수를 찾아... 회복을 열망하는 이들이여! 이 땅 한반도의 남도땅 신안의 증도로 순교의 길을 찾아 떠나라. 어쩌면 증도대교의 개통은 우리들의 신앙회복을 열망했을 그녀 기도의 응답이 만들어 놓은 회복의 가교가 되리라.

▲ 중동리 해안가를 타고 들어가면 나타나는 우전리 해수욕장...     © 뉴스파워 강경구

▲ 신안 증도의 끝 보물섬 유물전시관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 뉴스파워 강경구

▲ 신안 해저 유물전시관 보물선이 있는 곳을 가다가 만난 일명 삭개오의 뽕나무(일행이신 목사님이 명명하심...)     © 뉴스파워 강경구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조선대학교 대체의학과 초빙교수/광주여자대학교/송원대학교/서영대학/고구려대학/빛고을노인건강타운/효령노인건강타운 강사
 
기사입력: 2010/08/06 [22:38]  최종편집: ⓒ news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