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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기운 가슴을 하나로 묶은 그분의 메시지... | ||||||||||||||||||||||||||||||||||||
무등산 헐몬 이제 이곳에 그분은 계시지 않는다. 언제부터가 허리구부정한 노파 한 분이 정원을 가꾸고 계셨다. 칠순도 훨씬 넘어 보이시는 할머님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으셨기에 정겹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오를 때마다 여쭙던 인사말씀이 생각나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그 고요한 일상 속에 꽃피는 봄이 오고, 비오는 여름날 계곡을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의 물결이 있었다. 바람 부는 가을 한없이 떨어지던 붉은 빛 낙엽을 아 결코 잊을 수가 없구나.... 잔설이 맴돌던 나무를 부여잡고 몸부림치던 기도의 시린 목소리들도 다 포용하던 무등산, 그 자락에 헐몬이 있고 정규오 목사가 계셨다.
90세 고령의 정규오 목사님을 뵙다. 결코 우연이었지만 광주신학대학과 무등산을 오간 그날 뜻밖에도 89세의 고령에도 맑은 혜안을 가지신 목사님은 격려와 축복을 잊지 않으셨다. 어린 학생들의 찬양에 웃음과 아멘으로 화답하시는 목사님에게서는 명절 때 어린 손주를 품에 안고 반가워하시는 친할아버지 모습 그 자체였다. 그 어떤 선입견도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한차례의 일면식도 없었던 터라 우두커니 서있는 나에게도 웃음과 반가움을 건네시던 목사님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 그 만남 이후로도 여러차례 무등산을 오르고 헐몬 수양관을 올랐지만 부지런하신 노할머님 만을 뵜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 그분의 소천 소식을 접하며 딱 한번의 만남에 대한 소감과 감회를 적자니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정신없이 셔터만을 꾹꾹 눌러댔지만 질문마저 꾹꾹 누를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상황이 생각나 조금 우습기도 하다. 1945년 해방이라는 자유를 누렸어야 함에도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가녀린 한반도의 자유를 향한 생채기...가열찬 투쟁의 서막이 시작되고 있었으니... 그 투쟁의 막 사이에 정규오 목사가 있었다.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9월 조선신학교에 입학한 정규오는 차남진, 엄두섭, 손두환, 김준곤, 신복윤, 김일남 등과 입학동기가 됐다. 이후 1948년 5월 6.25전쟁을 2개월 앞두고도 여전히 교단은 분열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으니... 사실이지 예장고신과 예장고려, 기장, 예장통합과 합동, 예장 개혁에 이르기까지 신학적 차이, 이념적 차이, 심지어 교권과 지역갈등 등의 주요 원인으로 분열이 있어왔지만 그 분열 배후로 6.25가 있었고, 1980년 5.18 광주민주화항쟁 등의 역사적 아픔 등 깊은 상처가 있어왔다. 교단의 가장 존경받는 분 중 한분이셨던 한경직 목사님이 1992년 6월 18일 여의도 63빌딩에서 뎀 풀턴상 수상 축하식 인사말에서 "나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했습니다"라는 47년만의 회개로 우리 기독교의 친일에 대한 책임은 끝난 것인가?
대한민국 친일의 역사 그 한편에 기독교도 있다.
그리고 그곳에 91세의 정규오 목사가 계셨다. 그는 그 뜨거웠을 여름 노구를 이끌고 하나님 품 속 같은 무등산을 떠나 머나 먼 서울행을 나섰다. 생각해보면 그 해 2004년 여름 지친 육신과 고뇌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수도없이 오르셨을 무등산자락.... 아마도 그날은 그분을 실어 나르던 차가 보이지 않았던 그날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남은 여생에서 합동하기를 갈망하며 과거를 청산하려 했다는 목사님에게서 더위가 무슨 이유가 됐을 것인가? 그립다... 그를 만나러 가던 길... 물어보고 싶었던 많은 질문들을 꾹꾹 누르며 한참을 지켜보던 그때가 차마 그립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정규오... 그에게 있어 삶은 하나님이었다. 오직 한 길.... 그 길을 위해 택했을 그의 모든 결정 중에 그는 분열이라는 그의 결정중 하나를 아낌없이 번복하였다. 91세의 노구를 끌고 그가 희망했던 한 가지는 하나님안에서의 하나됨이었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시는 신의 음성이 들린다면 좌파니 우파니 거들먹거리는 소리들이나, 라이트니 래프트니 하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은 교계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정치로 쏠려가는 교회의 무게중심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쪽으로 선회해야 할 것이다. 돌을 들어 사정없이 내려치려는 무지와 무모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 우리들이 든 돌멩이는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 것인가? 정치는 교회를 세속화 시킬 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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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2/01 [05:19] 최종편집: ⓒ newspow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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