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기사글

무등산 헐몬 수양관에서 만난 백발의 정규오 목사님

투데이뉴스코리아 2006. 2. 1. 20:35

 

 

찢기운 가슴을 하나로 묶은 그분의 메시지...
 
강경구

무등산 헐몬 이제 이곳에 그분은 계시지 않는다.
힘들고 지칠 때 무등산을 오른다. 중심사가 있는 중봉도 아니고 서석대, 입석대, 산장도 아닌 곳, 긴 산허리를 따라 휘어 도는 버스의 끝자락에 메달려 두둥실 무슨 주문처럼 오르던 그 곳에 헐몬 수양관이 있다. 멀리 무등산 자락.... 아득히 구름은 흐르고 수양관 끝자락을 보고 읊어대던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십자가가 떠올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어두워 오는 조국 하늘에 모가지를 떨구고 조용히 피를 흘리겠다던 영원한 형 윤동주...

언제부터가 허리구부정한 노파 한 분이 정원을 가꾸고 계셨다. 칠순도 훨씬 넘어 보이시는 할머님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으셨기에 정겹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오를 때마다 여쭙던 인사말씀이 생각나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그 고요한 일상 속에 꽃피는 봄이 오고, 비오는 여름날 계곡을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의 물결이 있었다. 바람 부는 가을 한없이 떨어지던 붉은 빛 낙엽을 아 결코 잊을 수가 없구나.... 잔설이 맴돌던 나무를 부여잡고 몸부림치던 기도의 시린 목소리들도 다 포용하던 무등산, 그 자락에 헐몬이 있고 정규오 목사가 계셨다.

   
▲ 원로 목사님 한 분이 하나님 품으로 가셨다. 79년 이래 한번도 다시 하나됨을 잊지 않으셨다는 분...

90세 고령의 정규오 목사님을 뵙다.

2003년 꽃피는 봄이었다. 수양관 초입을 장식하는 산수유의 화사함을 뒤로하고 오르던 헐몬수양관, 태국 치앙마이 예수원에서 대한민국을 방문한 예수원 소속 고등학생 5섯명을 데리고 선교보고차 광주에 온 박문수 선교사 일행과 함께였다.

결코 우연이었지만 광주신학대학과 무등산을 오간 그날 뜻밖에도 89세의 고령에도 맑은 혜안을 가지신 목사님은 격려와 축복을 잊지 않으셨다. 어린 학생들의 찬양에 웃음과 아멘으로 화답하시는 목사님에게서는 명절 때 어린 손주를 품에 안고 반가워하시는 친할아버지 모습 그 자체였다. 그 어떤 선입견도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한차례의 일면식도 없었던 터라 우두커니 서있는 나에게도 웃음과 반가움을 건네시던 목사님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 그 만남 이후로도 여러차례 무등산을 오르고 헐몬 수양관을 올랐지만 부지런하신 노할머님 만을 뵜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 그분의 소천 소식을 접하며 딱 한번의 만남에 대한 소감과 감회를 적자니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정신없이 셔터만을 꾹꾹 눌러댔지만 질문마저 꾹꾹 누를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상황이 생각나 조금 우습기도 하다.

조선신학교 51인 신앙동지회 회장 정규오 그의 죽음앞에서
숨막히는 역사의 어둠과 식민지배의 굴절된 역사가 절정을 치닫던 1940년대, 그 시퍼런 무력의 칼날이 무서워 여기저기서 매국과 친일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1942년 12월 김활란씨는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라는 글을 통해 반도여성은 웃음으로 내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라고 할 정도였다. 물론 기독교의 내부도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신사참배라는 거대한 올무가 교단을 옥죄이고 있었다.

1945년 해방이라는 자유를 누렸어야 함에도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가녀린 한반도의 자유를 향한 생채기...가열찬 투쟁의 서막이 시작되고 있었으니...

그 투쟁의 막 사이에 정규오 목사가 있었다.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9월 조선신학교에 입학한 정규오는 차남진, 엄두섭, 손두환, 김준곤, 신복윤, 김일남 등과 입학동기가 됐다. 이후 1948년 5월 6.25전쟁을 2개월 앞두고도 여전히 교단은 분열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으니... 사실이지 예장고신과 예장고려, 기장, 예장통합과 합동, 예장 개혁에 이르기까지 신학적 차이, 이념적 차이, 심지어 교권과 지역갈등 등의 주요 원인으로 분열이 있어왔지만 그 분열 배후로 6.25가 있었고, 1980년 5.18 광주민주화항쟁 등의 역사적 아픔 등 깊은 상처가 있어왔다.

교단의 가장 존경받는 분 중 한분이셨던 한경직 목사님이 1992년 6월 18일 여의도 63빌딩에서 뎀 풀턴상 수상 축하식 인사말에서 "나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했습니다"라는 47년만의 회개로 우리 기독교의 친일에 대한 책임은 끝난 것인가?

   
▲ 빠알간 단풍잎이 헐몬수양관 가는길에 줄지어 있다. 이제 좀 더 다르게 다가올 것 같은 가을이다.

대한민국 친일의 역사 그 한편에 기독교도 있다.
한국교회가 품고 있는 많은 아픔과 산고 중 단연 으뜸이 되는 것이 있다면 신사참배이며 또한 신사참배 반대운동일 것이다. 아직까지도 고이즈미 일본 총리며, 아베와 같은 이들이 신사참배를 가지고 세기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이 신사참배의 의미가 주는 의미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음이 분명하다.
주기철 목사가 1938년부터 1944년까지 4차례에 걸쳐 7년간 옥고를 치르면서 순교한 이래 신사참배 거부로 2천여명의 투옥과 2백여 교회가 폐쇄, 50여명의 순교라는 것은 한국교회사의 크나 큰 희생이며 상처임이 분명하다. 주기철 목사가 90년대 말까지 목사직을 박탈 당하여 목사란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있다가 해방된 지 50년이 넘어서야 겨우 목사직을 반환 받았다는 자료도 충격적이지만 그 배후에 친일목사들의 행패가 있었다는 사료들을 접할 때마다 대한민국 친일의 역사 그 한편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기독교의 위치에 대한 책임감과 완결하지 못한 과제에 대한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것은 무언가? 전쟁광들의 시신이 안치된 야스쿠니에서 벌어지는 신사참배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겐 분명한 자기반성과 향후 진로들을 예시해주는 것은 아닐까?

 

 

 

   
▲ 태국 선교사 박문수 목사님과 함께 우연한 기회에 평생 한번 가까이서 그를 뵈었다.


헐몬 수양관 가는 길 그를 만나러 가던 길...

2005년 합동측 총회는 1979년 비주류와의 분열을 청산하고 합동하였다. 드디어 합동하였다가 맞을 것이다. 산고 끝에 이뤄진 충격적이면서도 기쁜 소식이었다. 2004년 6월 11일 광주 가족회관에서 예장총회 임태득 총회장과 예장개혁 박갑용 총회장 등 양측 교단인사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교단 합동의 움직임은 두 번째 상견례 이후, 7월 1일 오전 11시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다시 만났으며, 이 날 참석한 예장총회 증경총회장 최기채 목사(광주동명교회)는 “오랫동안 헤어졌던 형제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와 기쁨을”, 예장개혁 증경총회장 김정중 목사(영광읍교회)는 “서로 사랑하여 주님이 기뻐하시는 화평을 이루도록 하자며” 한 알의 밀알이 되자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곳에 91세의 정규오 목사가 계셨다. 그는 그 뜨거웠을 여름 노구를 이끌고 하나님 품 속 같은 무등산을 떠나 머나 먼 서울행을 나섰다. 생각해보면 그 해 2004년 여름 지친 육신과 고뇌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수도없이 오르셨을 무등산자락.... 아마도 그날은 그분을 실어 나르던 차가 보이지 않았던 그날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남은 여생에서 합동하기를 갈망하며 과거를 청산하려 했다는 목사님에게서 더위가 무슨 이유가 됐을 것인가?

그립다... 그를 만나러 가던 길... 물어보고 싶었던 많은 질문들을 꾹꾹 누르며 한참을 지켜보던 그때가 차마 그립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정규오... 그에게 있어 삶은 하나님이었다. 오직 한 길.... 그 길을 위해 택했을 그의 모든 결정 중에 그는 분열이라는 그의 결정중 하나를 아낌없이 번복하였다.

 91세의 노구를 끌고 그가 희망했던 한 가지는 하나님안에서의 하나됨이었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시는 신의 음성이 들린다면 좌파니 우파니 거들먹거리는 소리들이나, 라이트니 래프트니 하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은 교계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정치로 쏠려가는 교회의 무게중심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쪽으로 선회해야 할 것이다. 돌을 들어 사정없이 내려치려는 무지와 무모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 우리들이 든 돌멩이는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 것인가? 정치는 교회를 세속화 시킬 뿐이다.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 / 전남노회 장로 / 의학박사수료(병리), 대체의학석사, 경영학, 철학 전공 / 조선대학교초빙교수 / 광주여대,서영대,송원대,고구려대학 강사 / 보성복내전인치유센터 보완대체의학 상담 / 빛고을,효령노인타운, 송정권노인복지관 노인치유전문강사 / 취재분야 - 선교사,봉사,보완대체의학,암치유 등
 
기사입력: 2006/02/01 [05:19]  최종편집: ⓒ news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