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여름 뜨거운 폭염속에서 불러보는 이름
▲ 그가 남겼던 미완의 과제들을 풀어가야할 어떤 몸부림이 필요하지 않는가라는 작은 물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 강경구 |
| 하루가 빠르다. 뜨겁고 힘든 땀의 일상이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된 느낌일 것이다. 계절은 이제 가을의 초입이지만 체감하는 뜨거운 더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신경직이라는 젊은 목회자를 떠나보낸 사람들이 가졌을 허탈함과 아쉬움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 온 여름을 지배하고 있다. 갑자기 떠나버린 그의 체취와 열정을 느끼기 위해 매주 찾아간 보성 복내 전인치유센터에서 불쑥 손을 내밀며 웃어줄 것 같은 이름... 아! 그러고보니 그의 웃음과 그의 정겨운 언어들이 너무도 그리워진다. 고인의 생전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가슴가득 그리움으로 채워져버리는 8월, 복내전인치유센터 한 켠을 폭염속을 눈부시게 서있는 빠알간 백일홍과 황금빛 노오란 금계국,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천봉산 자락의 계곡물들을 바라보면서 그가 남겼던 미완의 과제들을 풀어가야할 어떤 몸부림이 필요하지 않는가라는 작은 물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신경직이라는 동 시대를 같이 살다 간 걸출한 하나님의 사람이 보여준 열정과 복음의 숭고한 가치를 되새기며 말이다.
2012년 4월 4일 신경직의 전도현장
▲ 4월 25일 발행되어 현장 전도자들과 교회에 큰 도움이 되기를 축복해 주세요‘라며 소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현장전도 챔피언 표지다. © 강경구 |
| ‘오늘 터치현장전도는 중앙공원 주변에서 복음 전도했습니다. 오늘도 날씨는 따뜻했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발이 그려진 전도지를 주며 “선생님, 건강하세요! 예수님 믿으세요!”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받아서 집중해서 읽으면서 걸어갔습니다. 오늘 따라 운동하는 사람들이 낮 시간인데도 많았습니다. 오늘도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행복한 전도를 했습니다. 25일 글에서는 ’이번에 나오는 책인데 정말 어렵게 나오네요. 기도해주세요. 현장 전도자들과 교회에 큰 도움이 되기를 축복해 주세요‘라며 발간한 책을 소개했는데 바로 아래의 내용으로 발행된 현장전도 챔피언이다. 부침개 전도, 약속(도장 및 싸인) 전도, 전자 침 전도, 핸드폰 문자 전도, 발마사지 전도, 두부 전도, 하루 10분 전도, 피켓 전도, 네일아트 전도, 성공플러스 전도, 잡곡 전도, 라면 전도, 도형 전도, 붕어빵 전도, 뻥튀기 전도, 호두과자 전도를 포함한 40여 가지의 현장 전도법을 자세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바로 간암말기 진단을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도 그는 현장전도에서 느꼈던 소회들을 페이스 북에 끊임없이 남겨오고 있었다.
2012년 5월 충격적인 간암 진단
▲ 신경직 목사는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숨겨버리고 복음의 현장속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초연한 복음의 사람이었다. © 강경구 |
| ‘기도부탁드립니다!!! 여기는 부천순천향병원입니다’로 시작되는 5월 2일의 간암 진단 결과에 대한 기도부탁 후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기도드리던 그를 보성 복내에서 만난 것이 5월 말이다. 부단하게 움직이던 열정의 목회자, 성령의 터치와 복음의 열도를 강조하며 여전히 복음의 에너지를 마음속에 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가치를 소개해주던 희망의 전도자 신경직 목사를 우연히 현장에서 만난 것이다. 그 후 두 달간 그리움을 안고 달려가던 복내암전인치유센터(원장 이박행 목사)에서 형님처럼 정겹고 다정한 언어들로, 아름다운 찬양의 멜로디로 암환우들을 격려하면서도 여전히 민족 복음화를 꿈꾸던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소중한 복음의 추억들을 가슴에 새겼다. 아... 그 추억이라는 것이 이렇게 가슴을 아프게 하고 생각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요즘 새삼 깨달았다.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숨겨버리고 복음의 현장속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초연한 복음의 사람, 현장전도를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과 기술들을 몸소 익히고 실습해보고 싶어 했던 그에게 대체의학을 소개하며 복음의 수단과 도구를 위해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고 협력하자던 그의 열정앞에서 죽음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7월 8일 신경직이 불렀던 하나님 아버지
▲ 7월 11일 통증이 너무 심하다. 이런적이 그동안 한 번도 없었는데 무리한 것이 원인인가?라며 자신에게 찾아온 통증으로 아파했다. © 강경구 |
| ‘아~버~지! 치유센터에서 얼굴을 하늘을 향해 들고 호흡을 가다듬고 크게 외친다. 아~버~지! 오늘도 아버지를 부르며 주일 하루를 시작한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긍휼을 베풀어 주세요!” 내가 해야 할 많은 짐을 아내가 지고 가고 있다. 가정의 일, 자녀교육, 교회사역, 지역아동센터. 육체적인 것, 경제적인 것 등 많은 일들을 연약한 아내의 어깨에 지워버렸다. 나는 4월 26일 병원진단 이후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기 때문에 아내가 그때부터 무거운 짐을 버겁게 지고가고 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가족과 교회를 위해 지금 내가 무엇을...해줄 수 있나?’로 고민하던 신경직 목사는 담임하던 교회의 목양과 대학 3년, 고교 3년 , 중 1학년을 둔 부모의 경제적인 후원으로 심하게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신경직 목사 치유와 회복을 위한 사랑의 후원금 구좌를 받아 적으며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적도 있었다. 국민은행 신경직 041-21-0955637... 아직도 우리들의 사랑과 관심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리라.... 여러분의 사랑을 잊지 않겠다던 신경직 목사는 7월 11일 통증이 너무 심하다. 이런적이 그동안 한 번도 없었는데 무리한 것이 원인인가?라며 자신에게 찾아온 통증으로 아파했고, 곧이어 12일, 고통을 감내하며 감행한 순회전도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사역을 두고 떠나는 자와 남는 자...
▲ 그가 남긴 많은 현장 전도 안내서들이 정리되어 있다. © 강경구 |
| 나는 아직도 그를 보내지 못했다. 몸소 찾아준 광주 힐링센터 사무실과 보성 복내전인치유센터, 그리고 집회차 방문한 광주의 번성교회(강민수 목사)에서 여전히 신경직은 전도와 예수전도에 미쳐버린 사랑의 사역자로 기억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나보내며 울어야 했다. 그 울음의 진정한 의미는 아마도 그가 가진 열정이 답일 것이다. 그의 열정과 사랑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용솟음 치고 있다. 무언가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8월이다. 그가 목숨을 바쳐가며 외치던 성령의 터치가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마음 안에서 뜨겁게 일어서는 불길이 되주길 그는 여전히 바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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