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기사글

박형동 장로<이제 부모만이 희망이다1>

투데이뉴스코리아 2018. 1. 31. 12:24






박형동 장로<이제 부모만이 희망이다1>
자녀들과 함께 행복하게 걸어가는 길 밝혀
 
강경구
“생각해보면 나는 참 무모했었다”
▲ 광주 지산교회 박형동 장로     © 강경구
다음은 지산교회(천호진 목사) 박형동 장로가 자녀교육과 관련된 내용을 발표한 것을 정리한 글이다.


 박형동 장로는 광신대학교, 호남대학교, 전주대학교, 조선이공대와 경신여고, 신광중, 금호초 등의 여러 교육기관과 월광교회, 무돌교회, 세광교회, 예수사랑교회, 생명의 전화 등 여러 평생교육원을 순회하며 백여차례 강의를 해오고 있다.


박형동 장로는 자신을 “생각해보면 나는 참 무모했었다. 내 아내는 더욱 무모했었다. 나는 비교적 합리적인 사람이어서 모든 것을 계산하거나 대비하는 성격인데 내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계산이나 대비 없이 그냥 살았다. 그런 부부가 겁 없이 다섯이나 낳았다. 나라에선 둘만 낳아라,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계몽운동과 함께 제도적으로 하나둘만 낳게 제약했었다. 셋이면 중고등학교 납부금도 주지 않았고, 소득세 공제 대상에도 끼워주지 않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현장에서 가장 많은 고민거리일 수 있는 내용을 그는 강의 속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준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강의에서 삶의 해법을 어렵지 않게 찾는 것 같다.

학교 선생으로 자녀들에게 미안했던 인생

▲ 아이들을 키우며 느꼈던 인생의 여러 이야기들...     © 강경구
소득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많기는커녕 공동묘지 곁의 산비탈에 조그만 집 한 채가 내 재산의 전부였다. 교사 봉급만으로 아내와 함께 다섯 자녀를 길러야 했으니까 아내의 살림살이가 궁색했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김 한 장을 9조각으로 나누어 밥을 먹여야 했고, 담 너머 언덕에 심어놓은 호박이나 채소 몇 포기를 따서 된장국을 끓이거나 반찬 삼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물론, 고생스럽다는 생각도 없었다. 다만, 내 아내에게 미안했고, 아내를 대하기가 어려웠던적이 많았었다. 아이들에게 풍족하게 해주지 못해 안타까웠다. 최소한의 학용품이야 준비해주었지만 참고서는 사 줄 수 없었다. 다행히 교사였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참고서는 동료교사들에게 정답이 다 나와 있는 교사용 참고서들을 얻어다가 주었다. 후일 초등학교 교사가 된 내 제자는 초등학교 참고서들을 얻어다 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튼튼하지는 못했지만 건강하게 자라 주었고, 큰 말썽을 부리지 않고 자라 주었다.

에릭 와이너의 ‘행복지도’라는 책을 읽다가...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지혜롭고 대담했었다. 아내는 더 그랬다. 나는 에릭 와이너의 ‘행복지도’라는 책을 읽다가 행복은 지구상의 어떤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집, 내가 자녀들과 함께 걸어온 길 위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온 것을 감사했다. 나는 그 길 위에서 무척 행복했기에 때로는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이제 그 길을 다른 사람들에게 펼쳐 보이고 싶다. 그들도 내가 걸은 길을 걷도록 권하고 싶다. 반드시 똑 같은 길은 아니더라도 여러분만이 걸을 수 있는 그런 길이 있다고 귀뜸해 주고 싶다. 아니 그 말을 해주지 않고는 내가 견딜 수가 없다.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처럼 말이다. 이제는 가난한 우리집에서 다섯 아이들이 어떻게 바르고 유능하게 자라서 따뜻한 사람이 되었는가를 말하고 싶다. 그 길을 펼쳐보여 주고 싶다. 남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명문대학을 나와 선망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는가보다는 다섯 자녀들이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가? 얼마나 서로 아끼며 우애하는가? 자기 일을 하며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다.

직업을 통해서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가?
나는 내 아이들이 서울대 법대와 카이스트를 합격하거나 의사나 교사가 된 것을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 사회에서는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선호한다. 판검사, 변호사, 의사, 약사, 교사 등 사자 돌림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다. 다섯 아들들은 목사, 의사, 딸들은 교사로 자랐고, 세 며느리는 의사와 간호사, 사위는 공무원이니까. 그러나 ‘무슨 직업을 갖게 되었는가?’ ‘얼마나 많은 소득을 얻는 직업을 갖게 되었는가?’보다 그 직업을 통해서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가?’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보람을 얻을 수 있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이 말은 어떤 직업을 갖느냐보다는 그 직업을 통해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자녀들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도 바로 후자인 셈이다.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고구려대학 대체의학 겸임교수/노벨요양병원 보완대체의학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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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5/16 [00:48]  최종편집: ⓒ news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