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기사글

빌보드음악차트 향한 시각장애인의 꿈1

투데이뉴스코리아 2010. 12. 15. 10:37







빌보드음악차트 향한 시각장애인의 꿈1
장애는 handicap이지 complex가 아니라고 말하는 장성규를 만나다
 
강경구
2009년 시각장애 1급으로 독일 kassel 음대 석사 졸업한 장성규

뼈 속까지 춥다고 해야 할까? 옷 벗은 마른 나무 가지들의 앙상함이 주는 추위의 체감은 공포스러울 정도다. 언제였던가? 무더운 여름을 에어컨과 선풍기로 날려버리자며 호들갑을 떨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련해진다. 화려하게 산하를 수놓던 채색된 가을 추억은 이제 사치스러울 정도로 아득한 기억의 저편이 되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추위는 배가 고픔으로 인해 더욱 징글맞고 서글프다. 허기진 배를 달래주던 시골 어머니의 생고구마와 저장된 무우들이 사라진 지금의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포장된 겨울은 배고픈 자들에게는 처절하게 경험되는 지옥의 체험일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추울수록 봄은 가깝고, 인생의 사는 고통이 정점일수록 기쁨은 가까이에 있음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참고 가보자고 할밖에... 

▲ 시각장애 1급 장성규, 그에게 배고픔은 추억일 수 없다. 말 그대로 고통이었다. 삶이 막막한 그가, 눈앞이 캄캄한 그가 느끼는 막막하고 어두운 현실은...     © 뉴스파워 강경구
시각장애 1급 장성규, 그에게 배고픔은 추억일 수 없다. 말 그대로 고통이었다. 삶이 막막한 그가, 눈앞이 캄캄한 그가 느끼는 막막하고 어두운 현실은 비장애인인 우리들에게는 상상될 수 없는 극한(極限), 혹은 투쟁(鬪爭)이라는 단어에 삶을 비견할 만 할 것이다. 1982년 고흥에서 태어나 88년 시각장애인들의 교육의 요람인 광주세광학교 초,중,고 과정을 마치고 광주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클라리넷(clarinet)을 전공한 그는 2005년 독일로 가 11번의 낙방 끝에 2007년 11월 캇셀 음악대학교를 합격하고, 2009년 12월 영광의 석사졸업장을 받았다. 이후 잠시 귀국하였고, 2010년 도미하여 현재 austin에 거주하면서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어학연수중이다. 이제 그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쉼 없이 쏟아지던 5시간동안의 눈물로 드렸던 기도
독일에서의 소통되지 못하는 언어문제로 밤을 지새우며 공부하다가 돈이 없어 빵을 먹었는데 곰팡이가 핀 빵을 먹고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몸서리치는 토사곽란으로 요란스럽게 독일 신고식을 치렀던 장성규는 자그만치 11번이라는 낙방 끝에 2007년 캇셀 아카데미 음악대학교를 입학했다. 독일생활 2년째였다. 시각장애인이라는 고난을 이겨낸 실로 가슴이 터지는 기쁨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후 독일생활은 만만하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치솟는 환율문제였다. 

▲ 기차의 요란한 굉음 속에서 그는 장장 5시간을 울고 또 울었다. 기차가 내는 기적소리처럼 삶이 아득해지는 순간이었다.     © 뉴스파워 강경구
장성규는 당시 실로암사람들 부설 무진장애인장학회에서 매달 보내주는 장학금 120만원을 도난당하기도 했다. 이후 밀리는 방세와 식사 값이 바닥나 한 끼 씩은 그냥 거르게 되었고, 이후 두 끼를 금식으로 버티기도 했었다. 심지어는 독주회를 앞두고 일주일에 4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 날들도 비일비재 했다고 한다. 먹을 물마져 떨어진 6월의 어느 날, 3일 동안 거의 밥을 먹지 못한 채 힘겨운 몸을 이끌고 베를린 행 기차를 탔을 때 화장실에서 손 씻는 물을 받아서 마시면서 하염없이 울고 또 울면서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난 너무 힘이 듭니다. 돈도 없습니다. 누구에게 하소연 할 때도 없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오는 겁니까? 주님, 저는 그냥 매일 먹을 양식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정말 배가 고픕니다. 저를 살려주세요!" 라고 울면서 기도했다. 기차의 요란한 굉음 속에서 그는 장장 5시간을 울고 또 울었다. 기차가 내는 기적소리처럼 삶이 아득해지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침묵하실 것 같았던 주님이 비로서 성경 구절을 주셨는데 그게 바로 욥기 23장 10절이었다. 

장애는 능력이며, 장애는 아름답다. 

▲ 2005년 망월동을 찾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픔과 통곡이 있는 곳에 가 그는 가슴깊은 곳에 있는 아픔과 절망을 클라리넷의 음률로 승화시켰다.     © 뉴스파워 강경구
12월의 찬바람이 거센 바람을 쉴 새 없이 토해내고 칼 달린 눈발은 여기저기를 할퀴고 지나간다. 요란스럽게 유리창을 흔드는 새벽바람 속에서 느끼는 가난과 배고픔의 극한을 이겨낼 때 찬란한 새벽은, 인생의 화려한 봄은 오고 말 것임을...

초인이라고 해야 할까? 장성규는 클라리넷을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접한 음악은 하늘이 그에게 부여한 재능이고 인생의 과제였다. 드럼, 트럼펫으로 시작하여 피아노, 섹소폰, 기타 등을 섭렵하고 지금의 클라리넷을 시작한 이래 어느 누구에게 쉽게 배움의 길을 얻지 못하는 특수한 환경을 스스로 극복하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비로서 배동환 선생님을 만나 레슨을 시작한 6개월의 각고 끝에 광주대학교를 입학하였고, 지금은 독일로, 미국으로 인생의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네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독일의 베를린 행 기차 안에서 받은 욥기서의 말씀이 한시도 그를 떠나지 않았다. 장성규가 미국에서 섬기는 교회는 오스틴 한인 장로교회로 그곳에서 그는 찬양 사역자로 봉사하고 있다. 정확하지 않을 사물들을 흐릿한 시선과 온 마음 안에 고정하고 마음과 뜻, 생명을 다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또 고백한다. 시각장애라는 틀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장성규의 찬양소리가 귀에 선하다. 묵직한 음성과 덩치 큰 몸을 이끌고 외로움과 절망을 잠잠히 이겨내는 음악인 장성규의 용기와 신앙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 장성규가 플어가야 할 아직도 많은 미완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클라리넷이 전공인 그에게 아직도 개인소유의 클라리넷이 없다는 것도 2011년엔 풀어야 할 과제다...     © 뉴스파워 강경구
클라리넷을 전공하고도 자신의 소유로 된 클라리넷이 없어 기도하고 있다는 장성규의 기도에는 분명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 "하나님 난 너무 힘이 듭니다. 돈도 없습니다. 누구에게 하소연 할 때도 없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오는 겁니까? 눈부신 승리를 향한 장성규의 힘찬 행보를 기도드린다.     © 뉴스파워 강경구
미국 텍사스에서 정확하지 않을 시야를 어렵사리 확보하며 야무지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그를 만난다. 아무렇지 않게 당당하게 어딘가를 향해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하며 걸어갈 아주 특별한 남자 장성규, 예쁜 신부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책읽기, 여행하기, 밤새도록 수다 떨기가 취미인 그는 남들이 안해보는 모험을 해보는 것이 소원이라지만 그의 소원은 이미 셀 수 없이 이뤄지고 있음을... 길거리에서 연주하고, 사람들을 도와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악기를 가르쳐주는 것이 지금 장성규의 소박한 기도제목이요 바람이란다.  

다음은 장성규의 미국생활이다.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고구려대학 대체의학 겸임교수/노벨요양병원 보완대체의학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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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2/15 [10:37]  최종편집: ⓒ news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