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초보은이란 은혜가 사무쳐 죽어서까지 라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뜻이다. 중국 춘추시대에 진(晋)의 위무자가 있었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젊은 첩도 순장(殉葬)해야 했으나 죽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라 재혼을 시켜주었다. 그날 밤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나 자신의 딸을 순장하지 않고 살려준 은혜를 보답하겠다고 얘기하고 사라진다. 세월이 흘러 전쟁이 일어나 위무자의 아들은 적장과 싸우다 도망가게 되었는데 거의 잡히려는 순간 적장의 말(馬)이 풀에 결려 넘어지고 그의 목숨을 건지는 것은 물론 적장을 죽여 큰공을 세우게 되었다. 그래서 적장의 말 앞의 풀을 묶어(結草), 은혜를 갚았다(報恩)해서 결초보은이라는 고사성어가 되었다.
“원한은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시대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은혜를 은혜로 깨닫지 못하고 마음과 입술에서 감사를 추방한 채 살아가는 것이라 하겠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동포의 마음에 감사함이 메말랐다. 모든 것이 자신의 힘으로 되어진 양 교만하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요,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감사는 나타내어야 하고 표현해야 한다. 로마의 문호 키케로도 감사는 최고의 덕이요, 모든 덕의 어머니라고 했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의 험난한 여정을 겪으면서 많은 낙심되는 일을 만났다. 언젠가 그는 역경을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최근 나는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을 쳐다보았는데 별들을 받쳐드는 기둥이 보이지 않는데도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루터는 하나님의 손길이 우주 만물을 붙들고 계심을 보았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손길이 오늘의 고단한 삶의 현장 속에서도 나를 붙들고 계심을 확신했다. 가을은 감사의 계절이다. 감사는 깊이 있는 생각가운데 감사할 수 있다. 감사가 적은 것은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묵상(黙想)이 적기 때문이다. 내 생애에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지 기억하라.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감사(thank)라는 말은 생각(think)에서 왔다. 깊이 생각할 때 감사가 가능하다. 깨달음이 깊을 때 감사는 많아진다.
뇌성마비로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송명희 시인은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고,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네”라고 노래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남들처럼 건강하지 못했지만 영적인 부요함과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큰가를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잃어버린 것보다 나에게 남아있는 소중한 것들을 헤아려 보자. 지나간 인생을 생각하며 삶을 돌아보고 감사를 찾아보자. 그리고 거기서 다시 시작해 보자.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범사에 은총의 생수를 부어주고 계신다. 소망의 사람은 모든 것을 은총의 산물로 바라본다. 비록 오늘 어려움과 역경이 찾아왔다 해도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예지와 인내를 가진 사람이다. 그 길은 오늘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헤아리며 감사하면서 내일을 소망하는데 있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의 마음으로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한은 물에 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