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기사글
한국기독교 130년에 대한 무모한 도전
투데이뉴스코리아
2018. 2. 6. 12:41

한국기독교 130년에 대한 무모한 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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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에 의한 열정이 탐욕으로 좌초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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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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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의 시작은 언제인가?
▲ 연희대학교는 1915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설립하였다. © |
| 오늘날 연세대학교의 교명은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의 통합 후에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연희대학교는 1915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설립하였고, 세브란스 의과대학은 1885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뉴턴 앨런Horace N. Allen)이 고종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광혜원을 전신으로 한다. 건학 이념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1~32)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진리와 자유의 정신을 체득한 인재를 양성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2011년 10월 27일 연세대학교 추경 이사회에서 정관을 개정하고, 법인 이사회에서 기독교계 인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축소하였다. 기존 정관에 따르면 총 12명의 이사 가운데 4인을 주요 4개 교단이 추천한 인사로 인준해야 하고, 협력교단 인사 2인을 사회유지 이사로 선임해야 했다. 하지만 개정 정관에서는 사회유지 이사 중 협력교단 인사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삭제되고, 교단 추천 4인 조항이 기독교계 인사 2인으로 변경되어서 이사회 중 교계 인사 인원수가 6명에서 2명으로 축소된 것이다. 정관 개정 발표 이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과대학 동창회, 연세대학교 설립자 언더우드의 후손 등 각계에서 학교의 설립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과 연세대학교
방우영(方又榮, 1928년 1월 22일 ~ )은 조선일보 사장과 회장, 명예회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언론인으로, 기업인으로 소개되고 있다. 경성 경신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연세대 상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이후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를 지냈으며, 1964년 조선일보 사장에 올랐으며, 이후 1970년부터 실질적인 경영권을 넘겨받아 조선일보의 성장기를 주도했다. 한때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며 과거 30여년간 국내 정ㆍ관ㆍ언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온 그는 지난 70년대부터 반공과 안보제일(상업)주의를 조선일보의 주요 가치로 내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방우영 조선일보 고문이 연세대학교 재단이사장을 하는 것은 연세대 상대 출신 동문으로서 동문회장을 하다가 모교 발전을 위해 이사장을 맡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연세대학교 이사장이 방우영씨라고 해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주고 있다. 방씨가 조선일보 창립자라고 해서 연세대를 조선일보 소유로 보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고려대는 동아일보 소유, 성균관대는 삼성그룹이 깊이 관여하고 있으므로 해서 생기는 주요 언론의 대학 소유형식의 모양새가 오늘날 연세대학교 사유화하라는 그릇된 욕심을 만들고 있는 듯하다. 방우영 이사장 전임 이사장은 고 이천환 대한성공회 주교로서 24년간 이사장직을 수행하였다. 이 그칠줄 모르는 소유욕은 조선일보라는 거대권력을 배후로 이제 기독교의 역사성마저 유린하고 비웃고 있는 듯하다.
연세대학교 사유화는 막을 수 있는가?
▲ 자신의 증조부인 언더우드 선교사 동상 앞에 선 피터 언더우드는 언더우드 가문을 대표하여 연세대학교의 행보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었다. © 뉴스파워 |
| 교회협이 연세대학교 이사장에 방우영 씨가 또다시 연임되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연세대학교 사유화를 촉진시킬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기독교 130여년간의 정통성에 조선일보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방우영 연세대학교 이사장의 사유화 의도의 의혹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사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학문적 근거가 미약한 현실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사의 공부와 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초 교회의 창립은 1884년 7월 4일 한미조약이 성립되어 전도의 문이 열리고 9월 20일에 북미합중국 북장로회 선교의사 알렌(安連, Horace N. Allen)부부가 경성에 입국하고, 다음해 4월에 장로회 선교사 언더우드(元杜尤, Horace G. Underwood)와 미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亞扁薛羅, Henry G. Appenzeller)가 입국한 후 같은 해 6월에 의사 혜론 부부가 함께 선교함으로 교회가 창건되었음을 조선예수교 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광혜원으로 시작하는 세브란스 의과대학이 1885년, 언더우드에 의한 연희대학교가 조선기독교대학이란 이름으로 1915년에 시작되었다. 안타깝게도 언더우드는 1916년 10월 12일 하늘에 부르심을 받았고, 이후 에비슨이 ‘연희’ 설립 후 18년 동안 세브란스의학교와 연희전문학교의 교장 직을 겸직하며 연세의 기초를 다져 나갔다. 이렇듯 언더우드에 이은 에비슨의 열정이 연희대학과 세브란스의과대학을 근원에서 결합하고 있으며 지금의 연세대학교의 모토가 되고 있다.
▲ 안타깝게도 언더우드는 1916년 10월 12일 하늘에 부르심을 받았다. 고귀한 희생과 한국선교에 대한 열정을 배워야 할 시점에 우리는 대학 사유화라는 자본주의의 탐욕에 흔들리고 있다. © 강경구 |
| 정치와 경제, 문화와 사회를 주도하는 한국의 대표 언론사의 사주였던 그가 이제 기독교의 정통성마져 손아귀에 쥐고 하나님을 상대로 하는 소위 탐욕의 죄를 현실화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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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고구려대학 대체의학 겸임교수/노벨요양병원 보완대체의학 상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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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2/23 [13:31] 최종편집: ⓒ newspow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