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기사글

도가니 피해학생들 보듬은 예수의 제자

투데이뉴스코리아 2018. 2. 6. 12:15






도가니 피해학생들 보듬은 예수의 제자
'도가니 사건' 재판 수화통역사 김창호씨 파워인터뷰
 
강경구

장애인의 달 '도가니' 재판 수화통역사 김창호씨를 만났다.

▲ 광산구 수화통역센터 근무하며 수화를 통해 섬김 실천하고 있는 김정훈 씨     © 강경구
광주 봉선동 겨자씨교회(나학수 목사)에 출석하는 김창호씨는 광신대학교를 졸업한 목사 후보생이었다. 4년간의 공부 끝에 그가 선택한 것은 뜻밖에도 사회복지사가 되는 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직인 목회자로 부르심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너무도 부족하고 초라한 자신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20년을 한결같이 외길 수화통역으로 살아오며 청각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의 소통을 기꺼이 감당하고 있는 그에게서 선택받은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는 상담 심리 분야 석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그의 명함은 광주 광산구 수화통역센터 근무로 되있다. 1992년 수화를 배웠고 그로부터 20년간을 수화로 청각장애인들의 입과 귀가 되주고 있는 그는 2005년 발생한 인화학교 사건 즉 도가니 사건 재판 과정 중에 항소심부터 수화통역사로 참여하게 됐다.

청각장애인들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선택한 심리상담 석사과정

▲ 20년을 한결같이 외길 수화통역으로 살아온 김정훈 수화통역사     © 강경구
2005년 발생한 도가니 사건 재판 과정 중에 피해 학생들의 성폭력 진위에 대한 상담에서부터 경찰, 검찰, 국가인권위 직권조사, 공지영 작가의 집필을 위한 인터뷰, PD수첩, 시사투나잇, 이후 도가니 재판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수화통역을 전담한 그의 청각장애인들을 향한 사랑은 남달랐다.
 
일명 도가니 사건이 발생한 2005년 이후 장애인인권단체인 사단법인 '실로암 사람들'이 2006년 9월 피해 여학생들을 위한 그룹홈을 만들었고, 2007년 1월에는 피해 남학생들을 위한 그룹홈을 마련했을 때 김창호씨는 거기서 피해 남학생들과 함께 4년을 지냈다. 가장 가까이에서 피해학생들의 삶을 이해하고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껴안아 줘야 하는 상황을 스스로 선택했던 것이다. 그룹홈 시절 아이들과 함께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과 청각장애 아이들과 마음을 열기까지의 긴 시간, 흡연과 도벽 등으로 이어지던 피해학생들의 정신적 피해 등을 보듬고 치유하기 위해 꼬박 4년을 그곳에 머물렀던 것이다.

2012년 4월 이제 결혼을 꿈꾸며 더 큰 소명을 실천하고파 했다.


▲ 수화가 필요한 곳은 언제든 달려가는 김정훈 씨가 하나된 소리에도 함께했다.     © 진성철
꽃의 계절 4월은 가장 화려할 것 같지만 가슴 아픈 장애를 가까스로 이겨내며 겨우겨우 피워내는 아름다운 인생들을 기억하자는 장애인의 날(20일)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장애인들의 아픔을 가까이서 보듬고 있는 비장애인 김정훈 씨의 나이는 올해로 마흔이다. 1986년 개봉한 작은 신의 아이들(Children Of A Lesser God)을 보면서 어려운 이웃과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입학한 살레시오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웃사랑의 꿈을 가꿨다고 한다. 당시 인생의 멘토였던 임동완 수사와의 인연또한 평생 잊을 수 없는 삶의 동력이라고 소개한다. 이후 광신대학교를 입학하여 장애인특수사역에 대한 목회방향 설정과 당시 봉선동 소재 인화학교를 출입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인화학교와의 첫 만남도 시작됐다. 그때 만났던 동갑내기 단짝들이 현재 수어로 하나된 교회 이용보 목사와 장애인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정시몬 목사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김정훈씨는 평신도 사역자가 되어 20년간을 수화로 섬김을 실천하고 있었다.

 
▲ 장성규의 연주와 송정미의 찬양을 수화로 표현하고 있다.     © 강경구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고구려대학 대체의학 겸임교수/노벨요양병원 보완대체의학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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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4/25 [09:23]  최종편집: ⓒ news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