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기사글

제주 선교 100년 역사를 간직한 교회들

투데이뉴스코리아 2018. 2. 5. 20:58






제주 선교 100년 역사를 간직한 교회들
<기획특집> 장로교 총회 조직 100년을 기념하며
 
강경구

격랑의 물에 빠진 한국교회

▲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제주도 추자도 부근 바다를 표류하고 있는 이기풍에게서 삶은 그야말로 바람앞에 촛불이었다. 100년전의 그날처럼 바다는 일렁거린다.     © 강경구
이기풍은 소리쳤다. “저를 살려주셔야 제주도의 불쌍한 영혼을 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꼭 쥐고 있는 널빤지 하나에 어쩌면 제주도와 한국교회의 운명이 메달려 있었다. 36시간,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제주도 추자도 부근 바다를 표류하고 있는 이기풍에게서 삶은 그야말로 바람앞에 촛불이었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처하고 있는 위기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지만 100년을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에게 다가온 100년이 주는 위기감을 무얼로 해결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끝없는 질문앞에서는 당시 제주도를 향하던 배가 난파당하고 홀로 목숨을 널빤지 하나에 의존하고 있는 이기풍의 모습에서 지금의 한국교회 모습을 발견하고야 만다. 한국기독교 127년, 제주선교 104년, 장로회 총회 조직 100주년이라는 슬로건이 물살을 갈으며 뿜어져 나가는 뱃전에서 격랑이 되어 조각조각 부숴지고 있다. 그 1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왔지만 지금의 한국교회는 아프고 시리며 절망에 가까운 부르짖음이 도처의 교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 교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가슴 아픈 절규들은 향후 100년의 성공을 위한 희망으로 바뀌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이기풍 선교사의 삶을 통해 확인하고 배운다. 

1908년 초기 제주선교를 통해 본 2012년 한국교회의 위기감

▲ 조선예수교 장로회 독노회를 기념하였던 1907년 1월의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을 것이다. 사랑하는 동기 목사들 길선주, 서경조, 한석진, 송린서, 양전백, 방기창이 손을 내밀고 축복하던 얼굴들이 그의 가슴을 뜨겁게 휘감아 내렸을 것이다.     © 강경구
1908년 2월로 추정되는 이기풍의 제주(산지포) 도착은 추운바다에 하루 반을 표류한 결과 그가 평생 동안 달고 다녔던 성대결절로 인한 실음증, 고질적인 관절염의 주원인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1907년 제물포에서 목선으로 목포로, 목포에서 다시 제주도로 향하다가 배가 난파하여 격랑의 바다 속을 떠다닐 때 그의 가슴에는 조선예수교 장로회 독노회를 기념하였던 1907년 1월의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을 것이다. 사랑하는 동기 목사들 길선주, 서경조, 한석진, 송린서, 양전백, 방기창이 손을 내밀고 축복하던 얼굴들이 그의 가슴을 뜨겁게 휘감아 내렸을 것이다. 조국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의 야욕에 놀아나는 그 기막힌 역사의 현장에 기독교는 조선 민중의 아픔을 뜨겁게 보듬고 위로해줄 활화산같은 성령의 역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기풍의 마음은 아리도록 추웠을 것이다. 추운 바닷속을 하루 반나절을 표류하고도 살아남은 그는 18,000개에 이르는 자연신앙과 주술신앙이 지배하는 제주사회의 높은 벽과 냉대와 배척은 물론이거니와 200명 이상 되는 사람들이 이기풍을 죽이기로 서약하는 등 사도행전의 바울같은 위기의 상황을 여러차례 직면했다. 끝내 영양실조에 이은 탈진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한다. 

초기 제주선교 성내교회, 성안교회, 그리고 모슬포교회

▲ 제주 성내 교회 입구 한 켠엔 이기풍 목사 당시에도 있었던 300년된 커다란 팽나무가 서 있었다.     © 강경구

이기풍 선교사는 1908년부터 1916년까지 제주도에서 복음의 씨를 뿌렸다. 초기 제주도에 1908년 금성교회,  서문통(성내)교회가 설립됐다. 1909년 조천교회, 1913년 용수교회, 1914년 중문교회, 1915년 한림교회, 세화교회, 1916년 고산교회 등이 그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곳들이다. 조천교회 송정훈 목사에 의하면 삼양교회, 성읍교회는 1908년 이후 설립 됐고, 모슬포교회는 1912년 설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 해방 무렵에 세워진 이기풍 목사와 김재원 장로의 선교 공적비와 100주년 기념비가 서있다. 기독교장로회 제주성내교회 정경     © 강경구


▲ 100년 전 이기풍 선교사가 사용했던 강대상이 교육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예배실 중앙에 놓여 있었다.     © 강경구
최초의 교회명은 성내교회이지만 1953년 장로교의 분열로 한국기독교장로회 성내교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제주성내교회는 최초의 성내교회 터에 세운 표지석과 100년 전 이기풍 선교사가 사용했던 강대상이 중앙에 놓여 있었다. 해방 무렵에 세워진 이기풍 목사와 김재원 장로의 공적비가 있었으며 교회 입구 한 켠엔 이기풍 목사 당시에도 있었던 300년된 커다란 팽나무가 서 있었다.

▲ 예수교 장로회는 통합교단인 성안교회가 성내교회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살려 제주 성안교회의 이름으로 10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었다.     © 강경구


▲ 1972년 서부교회와 제주중부교회가 합동하여 현재의 성안교회로 개명한 성안교회는 이기풍 기념홀과 의료선교 및 각종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었다.     © 강경구
예수교 장로회는 통합교단인 성안교회가 성내교회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살려 제주 성안교회의 이름으로 10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었다. 아라2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1972년 서부교회와 제주중부교회가 합동하여 현재의 성안교회로 개명한 것이다. 이들 기장측 성내교회와 예장측 성안교회는 각각의 창립 시점을 1908년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 제주도와 모슬포를 찾는이들에게 초기 제주 기독교의 역사와 순교의 생생한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 강경구
▲1909년 창립한 모슬포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으로 손재운 목사가 시무하고 있었다.     © 강경구
1909년 창립한 모슬포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으로 손재운 목사가 시무하고 있었으며 초기 모슬포교회 예배당과 신축한 현재의 교회 안에 선교기념관을 마련하여 찾는이들에게 초기 제주 기독교의 역사와 순교의 생생한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1927년 이기풍 목사 제주 성내교회로 재차 부임

▲ 1927년에는 2월에 다시 제주도 성내교회로 청빙됐다. 1928년 첫 선교지이며 목회지인 제주에서 회갑을 맞이했고, 위의 사진처럼 성내교회 재임중인 1930년 6월에 제주노회를 결성했다. 성안교회 100년사 자료다.     © 강경구

1916년 1년간의 요양후 이기풍 목사는 당시 충장로 3가 24번지에 있는 광주북문안교회에 한국인으로써는 최초로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2년후 다시 실음증과 관절염, 고막파열 등으로 요향후 1919년 10월 순천읍교회(현 순천중앙교회), 1920년에는 전남노회 노회장과 1921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0회 총회장에 선출되었다. 1924년에는 벌교읍교회로 부임했으며, 1927년에는 2월에 다시 제주도 성내교회로 청빙됐다. 1928년 첫 선교지이며 목회지인 제주에서 회갑을 맞이했고, 성내교회 재임중인 1930년 6월에 제주노회를 결성했다. 제주노회 제2회 노회장을 역임하고, 1934년 도서 벽지 여수군 남면 우학리 선교 및 도서 지방 순회 선교를 하였다. 같은 해 여수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금오도의 우학리 교회에서 시무하였고, 1942년 6월 20일 75세에 신사참배 거부의 이유로 당한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순교하였다.

▲ 이기풍이 제주땅을 밟은지 104년, 100년이 넘는 모진 바람속에서도 이기풍의 이름은 여전히 남아있다. 자신의 명리가 아닌 복음의 가치 선택이 준 결과일 것이다.     © 강경구


이기풍이 제주땅을 밟은지 104년, 100년이 넘는 모진 바람속에서도 이기풍의 이름은 여전히 남아있다. 자신의 명리가 아닌 복음의 가치 선택이 준 결과일 것이다. 제주복음화의 원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기풍의 제주행전을 마음에 담고 한국 교회 안에 일고 있는 위기감과 아픔이 치유되기를, 그리고 한국교회와 교단안에 화합과 대한민국과 세계 복음화라는 공동의 가치앞에서는 주저없이 하나되고 서로 섬겨줄 수 있기를 미력하나마 염원했다.

▲ 한국교회와 교단안에 화합과 대한민국과 세계 복음화라는 공동의 가치앞에서는 주저없이 하나되고 서로 섬겨줄 수 있기를 미력하나마 염원했다.     © 강경구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고구려대학 대체의학 겸임교수/노벨요양병원 보완대체의학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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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8/22 [22:53]  최종편집: ⓒ news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