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기사글
광주제일교회 백경홍 담임목사 추모글
투데이뉴스코리아
2018. 2. 1. 13:58

광주제일교회 백경홍 담임목사 추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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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 역사의 광주 최초의 교회 담임 시무하다 소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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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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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된 교회를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던 목회자
▲ 지난달 10월 19일 광주제일교회 15대 당회장인 백경홍 목사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광주제일교회 교회설립 96년이 지난 2000년 12월에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후 13년간 광주제일교회를 섬겼다. ⓒ 강경구 사진제공 : 광주제일교회 |
| 1904년 12월 25일, 광주제일교회가 세워졌던 당시는 눈내리던 성탄절이었다. 그후로 109년이 지난 지난달 10월 19일 광주제일교회 15대 당회장인 백경홍 목사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광주제일교회 교회설립 96년이 지난 2000년 12월에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후 13년간 그는 광주의 어머니 교회로 100년된 최초교회의 부담을 마음에 두고 늘 기도하고 눈물흘렸던 온유하고 사려심이 깊었던 목회자였다. 향년 56세로 그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10월 21일 광주제일교회에서 발인예배 후 전남 화순군 동면 광주제일교회 제일동산에 안장됐다.
광주의 어머니교회인 110년된 광주제일교회 15대 당회장 백경홍 목사
▲ 2013년 10월 21일 오전 10시, 제일교회 백경홍 목사 화순 남면 교회묘지 하관예배시 <멍에와 짐을 벗겨주시는 주님>으로 하관설교중인 호남신학대학교 강성열 교수 ⓒ 강경구 사진:박진성 전도사 |
| 미국 남장로회 소속 유진벨 선교사(Rev. Eugene Bell)가 당시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 사택에서 광주교회라는 이름으로 첫 예배를 드린 이후 110년이 코앞이다. 1906년 6월 북문 안 교회 설립, 12년 봄 김윤수, 최흥종 초대 장로 장립, 16년 8월 이기풍 목사 2대 담임목사취임, 19년 11월 남문 밖 금정 101번지에 북문 안에 있던 ㄱ자예배당을 뜯어다가 옮겨짓고 입당했던 금정교회, 21년 6월 제3대 남궁혁 목사 취임, 22년 4월에는 시인 김현승 선생의 부친인 제4대 김창국 목사 취임과 당시 여성 선교사로 조선선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서서평 선교사가 1922년 12월 26일에 부인조력회를 창립했었다. 대략 서서평 선교사의 삶까지를 논하면서 말없이 허공을 쳐다보던 백경홍 목사는 자신의 사역기간중 반드시 광주 최초교회에 대한 바른 인식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을 기도제목으로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2013년 6월 그때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다.
▲ 예배전 백경홍 담임목사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왕성한 교회사역을 위한 축복의 메시지를 남겨 보는이들로 감동의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 강경구 사진:박진성 전도사 |
| 광주제일교회(백경홍 당시 당회장)가 2013년을 가정 사역의 해로 선포하면서 초청한 치유상담원 정태기 목사를 끌어안던 그를 잊을 수 없다. 연로한 정태기 목사또한 젊은 목회자를 뜨겁게 껴안으면서 강대상에서 서로를 축복했던 그날 성도들은 한결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겼다. 그날 이후 눈물을 흘릴사이도 없이 그는 떠났지만 그의 한결같은 온유함과 인자한 미소를 지울 수 없다. 연약한 육신을 이끌고 올라서던 100년된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서도 그는 서서평 선교사의 일대기를 요약하며 감동하며 눈물 지었다. 낮게 들리던 목소리를 귀담아 듣자. 그의 음성은 떨려있었고, 어느새 먼저간 선교사들의 삶을 향한 열정과 후세의 우리가 그들의 훌륭한 과업을 이어가야 한다며 목놓아 부르짖고 있었다. 아... 그가 갔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연약한 육신을 주님의 뜻으로 돌리고 날마다 날마다 예수안에서 삶의 불꽃을 태우던 하나님의 사람, 눈물의 사람, 백경홍 목사...
2012년 4월 백경홍 목사가 말했던 아름다운 교회
▲ 그는 광주의 어머니 교회로 100년된 최초교회의 부담을 마음에 두고 늘 기도하고 눈물흘렸던 온유하고 사려심이 깊었던 목회자였다. ⓒ 강경구 사진:박진성 전도사 |
| “김구 선생은 아름다운 나라를 꿈꿨다. 소위 요즘 북한이 말하는 강성대국이 아닌 그야말로 아름다운 문화가 꽃피는 나라였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바로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의 은총가운데 모든 성도들이 만족하는 교회이어야 한다. 어떤 상황이든 튼튼하고 물댄동산 같은 나라를 꿈꾸고 가꿀려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 교회는 바로 생명수가 흐르는 교회로써 북한, 민족, 열방을 적시는 교회일 것이다.
2011년 3월 기독교와 3.1운동을 보는 복음적 가치를 설교했다.
▲ 한국교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예언자적 통찰력을 통해 잘못을 지적하는 용기와 미래를 바라보며 현실을 극복하려는 믿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했다. 당시 그의 메시지는 2013년 11월 복잡한 정치사회 현실을 볼 때 여전히 필요한 지적이라고밖에... ⓒ 강경구 |
| 백경홍 목사는 당시 남강 이승훈 선생을 이야기 했었다. 1902년 38세의 나이로 갑부가 됐고, 1907년 도산 안창호 선생을 통해 교육의 지평을 열었으며, 한석진 목사를 만나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하나님의 사람으로 헌신했던 이승훈 선생은 투철한 신앙관으로 오산학교와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발표까지 희생과 헌신을 강조했던 믿음의 사람이었다며 우리 민족과 한국교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예언자적 통찰력을 통해 잘못을 지적하는 용기와 미래를 바라보며 현실을 극복하려는 믿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했다. 당시 그의 메시지는 2013년 11월 복잡한 정치사회 현실을 볼 때 여전히 필요한 지적이라고밖에...
2011년 6월 백경홍 목사는 서서평 선교사를 통해 밀알신앙 강조
▲ 백경홍 목사는 서서평 선교사 죽음 이후 시신을 기증하는 등 그녀의 삶 자체가 소명을 이루기 위한 순종과 헌신적인 삶의 롤모델이었음을 강조했다. ⓒ 강경구 |
|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을 강조하며, 소명의 중요성과 소명을 이루기 위해 꿈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 부르심 이후의 순종과 헌신적인 삶을 통해 모범을 보였던 서서평 선교사를 이야기 하면서 서서평 선교사는 죽음 이후 시신을 기증하는 등 그녀의 삶 자체가 소명을 이루기 위한 순종과 헌신적인 삶의 롤모델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녀의 시신을 해부한 이후에야 영양실조와 과로가 죽음의 원인이었다는 대목에서는 추모식장이 숙연해기도 했었다.
▲ 그의 폐를 누르던 육신의 고통을 송두리채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연약하지만 폭발력있는 깊음을 나눠주던 그를 보내드리는 모두의 마음이 너무도 아팠던 이유... ⓒ 강경구 사진:박진성 전도사 |
| 늘 한박자를 쉬어가던 그의 설교 속에는 낮아짐과 온유함이 내재해 있었고, 직설이 아닌 깊은 배려와 품음으로 성도들을 배려하던 기도하는 사람으로 그를 기억한다. 그의 폐를 누르던 육신의 고통을 송두리채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연약하지만 폭발력있는 깊음을 나눠주던 그를 보내드리는 모두의 마음이 너무도 아팠던 이유는 그가 죽으면서까지도 자신의 연약함을 슬퍼하지 않고 그저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했던 고백 때문일 것이다. 현재 광주제일교회는 호남신학대학교 노영상 총장이 임시당회장으로 임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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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고구려대학 대체의학 겸임교수/노벨요양병원 보완대체의학 상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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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1/30 [18:32] 최종편집: ⓒ newspow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