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기사글
THE 1904, 화해자의 날 오웬각서 개최
투데이뉴스코리아
2018. 1. 31. 12:19

THE 1904, 화해자의 날 오웬각서 개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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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 소장 호남선교 발자취 나누며 광주 위해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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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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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1904, 화해자의 날 오웬각서 다채롭게 열려
▲ 17일, 광주 기독교사에 있어 의미있는 행사가 진행됐다. 양림동 외국인 선교사의 묘역이 있는 양림동 선교동산에서 태동한 17개 교회와 기관들이 초청됐다. 유진벨 선교사의 후손인 세브란스 국제진료 소장인 인요한 박사가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 강경구 |
| 17일, 광주 기독교사에 있어 의미있는 행사가 진행됐다. 양림동 외국인 선교사의 묘역이 있는 양림동 선교동산에서 태동한 17개 교회와 기관들이 초청됐고, 유진벨 선교사의 후손인 세브란스 국제진료 소장인 인요한 박사가 'THE 1904 화해자 날'을 기념하여 광주 기독간호대학교 내 오웬각에서 준비한 특별한 순서를 진행했다. 오후 4시 김유수 목사(월광교회, 광주시교단협의회장)는 축사를 통해 국가적 어려움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명에 충만한 진정한 화해자들이 필요한 시기라며 광주의 아픔과 세월호 참사의 아픔들을 조속하게 회복할 수 있는 기도와 사랑이 필요할 때라고 했다.
특별강의 유진벨 4대손 인요한 소장
▲ 포사이트, 오웬, 탤미지 선교사와 손양원 목사의 아름다운 삶이 더욱 조명되기를 바란다며 중간중간 구수한 사투리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 강경구 |
| 세브란스 국제진료 소장인 인요한 박사는 호남선교의 서막을 열었던 유진벨 선교사의 4대 외증손으로 광주와 전남 기독교사에 큰 획을 긋고 있는 유진벨 가문과 광주의 인연을 간단히 소개했으며, 고무신을 신고, 고구마로 배를 채웠던 배고팠던 유년의 어려움이 이제는 추억들이 되었다며 지리산 선교유적지며, 양림동의 선교유적지, 그리고 수피아, 숭일 등의 미션 스쿨을 1940년대 일제가 강제로 빼앗아 갈려고 했지만 당시 선교사들은 끝까지 거부하는 등 신앙의 순결과 고귀한 가치들을 생명으로 여기고 목숨을 걸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전원 추방이라는 속박 속에서도 수개월동안을 감옥에서 보낸 서서평 선교사와 같은 삶은 감동 그 자체라고 했다. 이어 포사이트, 오웬, 탤미지 선교사와 손양원 목사의 아름다운 삶이 더욱 조명되기를 바란다며 중간중간 구수한 사투리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양림동 선교동산으로부터 발원한 17개 교회와 기관들
▲ 특강후 양림교회를 배경으로 소향숙 박사와 수피아 여고 교목인 김용선 목사 등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함께했다. © 강경구 |
| 행사 도입부분은 서서평선교단 쉐핑 콰이어가 합창 “주님 기뻐하시리”와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불렀고, 캘리 그라피 포퍼먼스로 “화해자로 부르심(작가 양경모)”이 공연됐다. 이어 세가지 이야기를 주제로 첫 번째 이야기는 7인의 선발대~전주~군산~목포~광주선교부, 두 번째 이야기는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진 광주 백운교회, 광주서현교회, 광주양림교회, 광주제일교회, 광주중앙교회 소속 합창단원들의 합창 “조선인의 가슴깊이”와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진 학교와 병원으로 광주기독병원과 광주기독간호대학의 합창 “치료자 예수”, 수피아여고와 숭일고등학교의 합창 “공부하세”, 에클레시아 워십선교단의 “하나님의 은혜”, 다문화 새날학교 4C의 찬양 “내 구주 예수님”이 발표됐다. 세 번째 이야기는 THE 1904, 화해자로 부르심이란 제목으로 전체합창인 “고요한 아침의 나라”와 특별 축하팀인 LA 아주사 퍼시픽 대학교 남성합창단의 “화해의 노래”가 불리어졌다.
오웬의 삶 통해 본 화해자로 부르심의 의미
▲ 오웬각의 어둠이 몰려오고 있다. 광주 교회와 한국 교회의 위기때마다 오웬각은 기도와 눈물과 탄식과 아픔을 삭이는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오웬각을 감싸고 있는 기독간호대학과 양림교회 정경 © 강경구 |
| 1904년 12월, 광주의 새론 역사가 움텄다. 지금으로부터 110년전의 일이다. 오웬과 함께 광주로 이주한 유진벨의 삶은 광주 변화의 핵이 되어 광주 기독교사의 한 획을 그었다. 어쩌면 저항과 인권이란 닉네임을 광주가 달게된 것도 그들의 신앙의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04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유진벨과 오웬가족, 변창연 등 40여명은 광주지방 최초의 교회를 창립하고 감격적인 첫 예배를 드렸다. 당시 양림리는 광주의 중앙통이라 할 수 있는 남문에서도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 곳이었다. 주변엔 묘지가 많았고 인가는 드물었다. 어린아이가 죽으면 풍장을 하여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고, 시신을 먹기 위해 달려드는 여우들과 까마귀들의 서식처로 일명 ‘여우골’로 불리었다. 그런 양림산 후미진 곳에 교회를 세웠으니, 그 자체가 대단한 존재들이었다. 미신과 구습으로 인간다운 삶을 찾기에도 힘든 그야말로 미개의 시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은 일명 ‘서양촌’을 만들어 광주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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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고구려대학 대체의학 겸임교수/노벨요양병원 보완대체의학 상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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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5/19 [19:05] 최종편집: ⓒ newspow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