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기사글
호남의 소래교회 광주 광산구 삼도교회
투데이뉴스코리아
2012. 1. 3.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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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조선인에 의해 세워져 113년간 자생해온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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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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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구 삼도교회 광주 최초교회로서의 족적
▲ 100년이 넘음직한 종탑이 광산구 삼도교회 앞을 장식하고 있다. © 강경구 | | 한국 최초교회는 1885년 황해도 장연의 솔내 교회다. 호남쪽은 목포 양동교회가 1898년, 삼도교회는 1899년 1월 5일에 교회를 설립 했다고 한다. 1896년에는 전주서문교회(김승연 목사)(원명;全州郡 西門外敎會-전주서문교회는 교회의 설립을 1893년으로 표기)가 성립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호남에서 남장로교 복음의 역사는 전주서문교회와 김제송지동교회(장현식 목사)(1897년 전위렴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다)가 있지만 조선인에 의해서 세워진 자생교회로서는 삼도교회가 1899년 성립된 최초교회로서 남다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할 사항은 당시의 행정구역이 나주군 삼도리였다는 것이다. 당시 그곳 지명은 동촌(골말)이었고 바다등 교회라고 불리웠다. 하지만 지금 삼도는 광주광역시 광산구로 편재되어 광주지역 최초교회로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삼도교회 이전까지만 해도 광주 양림교회(노치준 목사)가 1904년이고, 역시 광주 제일교회(백경홍 목사)가 똑같이 1904년이라는 교회 설립일을 놓고 누가 먼저냐는 미완의 문제를 안고 2012년을 맞이하고 있다. 이에 앞서 당시 1901년 광주군 송정면 신촌리에 세운 송정중앙교회(박덕기 목사)의 교회 또한 최초교회의 범주에 들어간다. 삼도교회와 송정중앙교회가 행정구역상 광주광역시로 편재되지 않았을 때만 해도 양림교회와 제일교회는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는 최초교회를 놓고 심각한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1880년대 후반 호남선교의 맥
▲ C. C. 오웬(Owen, Clement Carrington, 한국명: 오기원)(1867- 1909), 유진 벨(Eugene Bell, 한국명 : 배유지)(1868-1925) 선교사는 최초교회에 대해 말이없다. 다만 복음을 외쳤을 뿐이다. © 강경구 | | 1889년 호주 장로교 입국 이후, 1892년 남장로교에서 파송한 레이놀즈 등 6명의 선교사가 입국하였고, 1893년 1월에는 남.북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선교부 공의회가 조직되어 제 1 선교사 공의회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후 호주 장로교 및 캐나다 장로교가 호남지방 복음화에 가세하였다. 이후 드넓은 선교지를 나누는 전도 정책을 통해 충청과 같이 관리했던 광주지역은 남장로교 선교지역이 되었고, 충청지역은 북감리교회가 감당하는 등 효율적인 복음화 전략을 사용했다. 1896년 배유지 선교사의 책임하에 전남 지방 선교가 나주를 중심으로 비중 있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1897년 3월에 시작된 미남장로교회 나주지역 선교기지 설립은 나주지역 유생들과 지역민의 반대에 부딪혀 7월에 실패로 잠정 결론이 내려졌고, 조선인이었던 이문오라는 사람에게 인계되어 1897년 7월 삼도리 교회의 전신을 이루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배유지 선교사의 어학선생이었던 이문오는 이후 주업을 폐기하고 자신의 여막(旅幕)을 예배처소로 사용했으며, 1899년 1월 5일 조선인에 의해 세워지는 역사적인 삼도리 교회가 설립되는 전기를 만들었다.
113년전 삼도교회는 세워지고 지금 우리는...
▲ 2010년에 태동한 광주광주역시 기독교유적지기념사업의 창립 예배 모습이다. 2년째를 맞이한 지금 교회역사에 대한 재인식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사진은 최기채(광주동명교회 원로목사) 목사다. © 삼도교회 | | 최기채(광주동명교회 원로목사)목사는 광주광주역시 기독교유적지기념사업회 대표회장으로 지난 달 12일 사업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설명하기도 했었다. 아울러 사업의 중요함을 주장하며 기념사업회는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내기도 했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믿음의 선진들의 피와 땀의 열매로 오늘의 풍성한 복음의 은혜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 풍성한 은혜는 목숨을 바쳐 헌신한 선교사님들과 그 사역자들의 수고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늦었지만, 지난날의 역사를 수습하고 정리하여 우리의 위대한 자산을 보존하여 후손에게 유산으로 계승할 절대적 필요성을 느낍니다. 역사가 없는 민족은 없지만, 그 역사를 보여주고 역사관을 심어주지 않는 민족은 절대로 발전하지 못함을 경험합니다. 한 예로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을 배출한 유대인들은, 그들이 집단을 이루는 지역이면 어디든지 지역이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역사박물관’을 세워서 후손들에게 민족의식과 성별의식, 희생전신을 길러줌으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본 기념 사업회에서는 광주, 전남에 어떻게 기독교가 들어오게 되었는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기념관을 건립하고자 합니다. 이 일은 광주, 전남의 기독교 역사와 호남지역의 근대사를 발굴하고 계승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소중한 유산으로 넘겨주어야 할 이 시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과제일 뿐만 아니라, 1200만 명의 기독교인들과 민족과 우리 민족의 역사를 사랑하는 우리 후손들이 바른 역사관을 갖고, 근대 호남지역의 역사를 한 눈으로 보고 배우며, 또한 복음 도래지에 대한 관심을 통해 믿음을 불러 일으켜 새로운 전도의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하여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잃는다는 뼈아픈 연세대학교 사유화 의혹
▲ 삼도교회의 역사를 말해주는 교회마당 종탑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며 역사와 신앙을 전해주는 박대규 담임목사 © 강경구 | | 한국기독교가 130여년간 소중하게 가꾸어 온 역사와 자산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연세대학교가 진행하고 있는 이사회 관련 정관 개정 과정과 배경에 조선일보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방우영 연세대학교 이사장의 사유화 의도가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 역사는 보고 듣고 문제를 인식하며 잘못된 것은 바로잡을 수 있도록 우리를 교육시켜왔다. 한국기독교 130년은 마냥 흘러온 것이 아니다. 삼도교회 박대규 목사와 주일학교 아이들... 박목사는 믿음안에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해 역사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친다. © 삼도교회 | | 우리나라의 교회 창건을 1884년 7월 4일 한미조약이 성립되어 전도의 문이 열리고 9월 20일에 북미합중국 북장로회 선교의사 安連(Horace N. Allen)夫婦가 경성에 입국하고 翌年 4월에 장로회 선교사 元杜尤(Horace G. Underwood)와 미감리회 선교사 亞扁薛羅(Henry G. Appenzeller)가 繼來하고 동년 6월에 의사 혜론 부부가 함께 선교함으로 교회가 창건되었다고 사기는 기록한다(조선예수교 사기 9쪽).
▲ 아이들은 크고 성장한다. 그들은 또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다. 삼도교회는 100년이 넘는 역사속에서 신앙과 믿음을 전수하며 성장하여 왔다. © 삼도교회 | | 요즘 사회적인 통념이 기독교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비판일색이다. 그렇다고 기독교의 정신이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장에서 지켜보는 바로 나눔과 사랑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언론에 비춰지는 단면이 지나치게 편협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결코 짧지 않은 130년을 앞둔 기독교의 역사성을 태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한 개인의 사리사욕으로 역사의 빗장을 채우려는 욕심이 잉태되고 있는 연세대학교의 현실에 교계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것으로 문제는 끝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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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1/03 [02:38] 최종편집: ⓒ newspow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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