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기사글
손양원목사 순교 64주기 기념음악회
투데이뉴스코리아
2018. 1. 30. 14:06

손양원목사 순교 64주기 기념음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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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민족지도자 손양원기념사업회 주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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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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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목사 64주기 기념음악회
▲ 여수지역이 손양원 목사의 기념사업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강경구 사진: 여수종교문제연구소 |
| 지난 8월로 손양원 목사가 일제치하의 종교탄압과 공산당의 기독교 박해로 순교한 이래 64주기가 지나고 있다. 사단법인 민족지도자 손양원기념사업회 주최로 지난달 손양원기념음악회가 열린 중동고등학교에서 중동고 총동문회를 중심으로 손양원기념음악회를 통한 손목사의 숭고한 삶과 순교적 가치에 대한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지난달 23일 GS 칼텍스 예울마루 대극장에서 열렸고, 사단법인 민족지도자손양원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재단법인 유나이티드 문화재단가 주관했다. 이 행사를 위해 중동고등학교 총동문회, 여수시, GS칼텍스 예울마루, 여수시교회연합회, 여수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CBMC전남동부연합회, 여수기독교윤리실천운동, 여수성시화운동본부 등이 후원하는 등 여수지역이 손양원 목사의 기념사업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돌 손양원 목사의 삶 되돌아 보았다.
▲ ‘20세기 사랑의 원자탄’ 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손양원 목사의 삶은 요즘들어 다시금 부지런히 재조명되고 있다. 공연후 함께했다. © 강경구 사진 : 여수종교문제연구소 |
| 목사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던 손양원은 쓰라린 가난과 삶의 궁핍이 주는 고난을 꿋꿋히 이기었음을 여러자료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중동학교에서 주간에는 학업에 열중했고, 밤에는 만두를 팔면서 어렵게 고학을 했지만,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부친이 고향에서 독립운동에 연루되 징역을 살게 되면서부터 심각한 경제적 고통과 심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손양원 목사는 중동학교에서 키워가던 꿈을 포기하고 학업을 중단했다. 손양원 목사의 학력은 중동학교 입학(1919년 4월)과 자퇴(1920년 4월 3일)로 기록되고 있다.
손양원 목사 신앙 본받자
▲ 손 목사의 이야기는 이제 세계 교회사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 강경구 사진: 여수종교문제연구소 |
| 한국교회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손 목사의 이야기는 이제 세계 교회사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20세기 사랑의 원자탄’ 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손양원 목사의 삶은 요즘들어 다시금 부지런히 재조명되고 있으며, 지난 2월 6일에는 95년 만에 모교였던 중동고등학교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기도 했다. 이후 중동고등학교총동문회(회장 백강수)는 지난 2월 13일 여수시를 방문하여 시청 상황실에서 손양원 목사 명예졸업장 전달식을 가지는 등 손양원 목사의 숭고한 신앙을 본받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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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의학박사(수료),대체의학석사/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고구려대학 대체의학 겸임교수/노벨요양병원 보완대체의학 상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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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9/14 [23:51] 최종편집: ⓒ newspow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