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기사글

지리산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있었다.

투데이뉴스코리아 2003. 12. 7. 15:11

 

2003년 12월 성삼재를 지나 노고단을 바라보며
 
강경구

 대망의 2003년이 달력 한 장을 남기고 있다. 늘 그랬지만 세월은 늘 나를 한 발 앞서간다. 빛바랜 2002년 월드컵도 세월의 무게 앞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연일 섭섭한 소식을 전해주던 축구 소식들로 2002년은 더욱 아득해지는 것 같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것 하나 마음 둘 곳 없이 바쁘고 정신없기는 매 한가지이다. 이라크 파병이라는 문제에 앞서 터진 민간인 저격 사망사건으로 더 한층 옹색해진 파병문제와 노무현 정부의 특검 대치정국은 한마디로 진퇴양란이고 오리무중인 것만 같다. 다수야당 총재의 단식이 끝나고, 어쩌면 그 단식이라는 것은 공포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 공포를 체험한 사람들은 알기에 어제의 적들도 그 공포의 밥 굶기 앞에는 격려와 온정의 미소를 보내는 것은 아닌지... 전직 대통령들의 격려의 전화와 몸소 격려차 방문했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그럴싸한 표정과 여전히 그로테스크한 표현들이 시선 안에 각인된 하루였다. 동반단식이라는 사상 유례 없는 밥 굶기에 동참한 같은 당 소속의 이 모 의원은 단식 중 쓰러졌다나 어쩠다나...

한편 열린우리당 김영대 노동위원장의 또록또록한 맞단식 밥 굶기의 처절한 반대 성명 또한 이색적인 하루였다. 과연 누가 고통스러웠을까? 다수야당이며 정치적 우위를 점하는 한나라당의 지지율 추락으로 빛바랜 단식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대하면서 어쩐지 씁쓸했던 최병렬 대표의 단식이나 그저 조그만 하게 10회 이상이라는 단식 경력과 그것도 최대표보다는 하루를 더한 김영대 위원장의 단식관련 짧은 기사가 주는 언론의 결코 보편적이지 못한 모습도 이제는 그저 그런 일이 돼버렸다.

지난 26일부터 서울 영등포의 개인 사무실에서 물만 마신 김 위원장은 단식을 중단하며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단식은 남의 단식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생애 가장 힘든 단식이었다"며 "다시는 이번과 같은 네거티브 단식이나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투정하듯이 밥부터 굶는 단식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투정하듯이 하는 단식은 어떤 경우를 두고 하는 이야기일까? 가끔 4살먹은 아들이 하는 장난감 인형을 타내기 위한 투정이나, 내일 모레 시집가는 여동생이 고가의 화장품이나 옷을 타내기 위해 쓰는 고도의 전략이 포함된 투쟁을 의미하는가?

▲지리산 초입 나뭇잎도 다 떨어진 말 그대로의 겨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온통 바람과 비와 그리고 태양이 하루를 시샘하듯 교차하고 있었다.     ©강경구

그런 하루였다.
늦가을을 적신 빗방울로 잔득 검은 그림자 드리워진 지리산을 찾은 나에게 주는 세상의 소식들이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세상은 흘러가고 산은 여기에 서있고 나는 산을 찾았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 한 치 앞을 분간 못하는 안개의 세상을 찾아 끝없는 찻길을 재촉하는 것을...

천은사 성삼재 노고단으로 이어진 추운 가을 여행에서 액자같은 낭만이나 그리움은 없었지만 여전히 석곡과 압록을 지나 구례로 이어졌던 지리산 산행이 주는 결과는 상쾌함이었다. 그것은 통쾌하고 멋진여행이었다. 일상이라는 공간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늘 있는 것이 아닌 어쩌다 누릴 수 있는 나에게는 사치며 과분한 여유였다.

 

긴 기적을 뒤로하고 섬진강을 헤엄쳐가는 기차의 옆구리를 견주며 달려본 12월의 여유... 단풍도 사라지고 노오란 은행나무 잎마저도 상실돼버린 쓸쓸하지만 인생의 향수같은 가을을 느꼈던 하루, 아 나의 님은 갔다고 소리쳤던 지독한 민족주의자 萬海 선생의 역정마저도 녹여버릴 진노한 지리산과 만난 오늘, 이 오늘 느껴보는 하루가 주는 내 마음의 상념들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끝없는 지시는 역시 투망(投網)이다.

 

달려야 사는 것이다. 달여야 사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내용이 주는 뉘앙스를 모르시진 않을 것이다. 달여야 사는 약재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이 지리산을 포함한 세상이라는 울창한 숲과 정글 속에 말이다. 그리고 그 빌딩의 숲, 야만과 오만, 폭거와 비겁이 꿈틀거렸고 여전히 비일비재하기에 우리는 달려야 사는 것이다.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의 지리산 그 산의 한 정점인 노고단을 향해 질주하는 저 푸른 젊음의 두 어깨가 축 쳐져있으나 희망이 있는 것처럼 그리하여 어둠이 내리고 안개에 사무쳐 눈발마저 날려버린다면 춥고 배고픈 누군가의 아름답고 찬연한 젊음은 얼어 죽기도 하고 갈 길을 헤매며 살려달라고 소리도 칠 것이 분명하다. 얼어 죽지 않기 위하여, 살려달라고 배터지게 외쳐는 봐야하기에 지리산이 있고 역시 나는, 우리는 투망을 하는 것이다.


뉴스파워의 첫 기사를 쓰기위하여 방문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 유독 정치의 낯설음과 갈수록 코너에 몰리는 어수룩한 갓 입학한 1학년 반장 같은 <그러나 어떤 이는 그를 위대한 정치승부사라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 앞에 우리 모두는 어쩌면 가녀리게 서있다.

 

노무현, 그는 오죽했으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직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으로서 적절치 못함을 지적당하는 것일까? 왜 어떤 이들은 그를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것일까? 노무현이 주는 상징성이 무엇이기에 전직 대통령들까지 나와서 그것도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한결같이 속닥거리고 비난하는 것일까? 무슨 정치적 야합이나 술수가 숨어있는 것일까?  휴우-

▲지리산 정상에서는 비와 바람이 교차했다. 하산을 서두르자 이내 태양은 떠오르고 있었다.     ©강경구

 

나는 또 무엇이 아쉽고 여운이 남아 정치의 치자도 모르는 인간이 속보이는 마음을 털어놓는 걸까? 책임질 수 없다면 지나쳐 가야한다. 그렇다. 의무감만으로는 이 땅은 안된다. 누군가 그랬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라고... 아무도 죽지 않을 나라라고 꿈도 희망도 상실한 비행청소년같은 나라라고... 하지만,

 

거기에 지리산이 서있었다. 변화무쌍(變化無雙)한 지리산, 바람이 매섭고 한치 앞을 분간 못하는 추운 겨울 초입에서 지리산(智異山)이 막나가자는 거냐며 웃고 있었다.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 / 전남노회 장로 / 의학박사수료(병리), 대체의학석사, 경영학, 철학 전공 / 조선대학교초빙교수 / 광주여대,서영대,송원대,고구려대학 강사 / 보성복내전인치유센터 보완대체의학 상담 / 빛고을,효령노인타운, 송정권노인복지관 노인치유전문강사 / 취재분야 - 선교사,봉사,보완대체의학,암치유 등
 
기사입력: 2003/12/07 [03:15]  최종편집: ⓒ newspower